[기자수첩]`오마하의 현인`은 살아있다

  • 등록 2011-05-03 오후 2:31:23

    수정 2011-05-03 오후 2:31:23

[오마하=이데일리 피용익 특파원] 오마하는 미국 중서부 네브라스카주에 위치한 작은 시골 도시다. 내세울 만한 관광 자원도 부족하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 휴양지로도 적합치 않다. 그런데도 오마하에는 100개에 가까운 크고 작은 호텔이 있다. 해마다 5월 이맘 때 쯤 열리는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 참석을 위해,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인파 때문이다.

주총 흥행 순위로 따지자면 버크셔해서웨이에 비할 수 있는 기업은 어디에도 없다. 오마하의 인구가 41만명인데, 버크셔 주총에 참석하는 주주가 4만명에 이른다. 미국 내 다른 지역은 물론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주들이 버핏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곳에 몰려 온다.

버크셔해서웨이가 오마하에서 고용하는 직원과 주총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주주, 그리고 `성지순례`를 오는 관광객들까지 고려하면 워렌 버핏이 오마하에 주는 경제적 효과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버핏이 언제까지 오마하를 먹여살릴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나이가 벌써 올해 여든이기 때문. 특히 최근 데이비드 소콜의 부당거래 스캔들 문제가 터진 이후 버핏이 부쩍 늙어 보인다는 얘기도 나온다.

▲ 오마하 시내 곳곳에는 워렌 버핏이 등장하는 광고판이 눈에 띈다.(사진=피용익특파원)
버핏은 오마하에서 태어나 거의 한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그는 버크셔의 회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계속 오마하에 살겠지만, 그 때가 되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 틀림없다. 항공기 운항 편수가 줄어들 것이고, 호텔은 문을 닫을 것이다. 실업자가 곳곳에 넘쳐날 것이 뻔하다.

오마하의 지역신문들은 그래서 버크셔해서웨이의 후계 문제를 유난히 비중있게 다뤘다.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던 소콜의 스캔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버핏의 고령이 근본적인 이유다. 한 지역신문 기자는 버핏에게 "후계자 선정에는 스타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버핏이 없는 버크셔 주총은 흥행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담긴 질문이다.

그러나 이틀 동안 가까이서 버핏을 만나면서 기자는 언론이 버크셔의 후계 문제에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버핏은 주총과 기자회견, 인터뷰,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보석매장 보샤임에서의 일일 판매사원 이벤트까지 이틀 간의 강행군을 거치면서도 피곤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작년에 비해 얼굴에 주름이 늘었을 지는 모르나 투자에 대한 의욕과 버크셔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 특히 소콜 스캔들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변함없이 꼬장꼬장한 말투를 들려줬다.

사실 후계자 관련 질문을 받는 버핏의 표정은 언제나 밝지 못하다. `당신은 이제 너무 늙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어떻게 보면 언론이 노인네에게 매번 큰 실례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주총에서 한 주주가 "당신이 50년을 더 산다면 어디에 투자할 것이냐"고 묻자 버핏은 "그 전제가 마음에 든다"며 밝게 웃었다. 기자회견에서는 "50년 전에 하던 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일하는 것이 즐겁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가 버핏의 뒤를 이어 버크셔해서웨이라는 그룹을 경영하게 될 지는 물론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어쩌면 버핏의 머리 속에는 후계자 선정에 대한 고민보다 앞으로 벌일 사업에 대한 욕심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오마하의 현인`은 살아있고, 그는 아직 젊기 때문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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