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는 흔히 `자본주의자들의 우드스탁`으로 불립니다. 주총 시즌이 되면 세계 각지에서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국 중부의 한적한 중소 도시 오마하로 모여듭니다. 이벤트의 흡인력이 1960년대 말 수십만명의 히피족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우드스탁 록 페스티벌에 버금간다는 의미에서죠.
실제 만나본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들은 마치 10년만에 휴가를 얻어 카리브해 휴양지에라도 온 듯 연신 기쁘고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버핏을 너무 존경한다. 그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 버핏이 있어 이 세상이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바뀌었다..."
미국인 특유의 과장된 어투를 감안하더라도 직업, 나이, 성별, 인종이 다른 투자자들이 한 목소리로 버핏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는 것도 새삼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버크셔 주총은 주총을 빙자한 거대한 사업장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주주들에게 성심성의껏 자신의 철학을 얘기하는 버핏은 과연 오마하의 현인다웠고, 한국의 주총처럼 고성과 삿대질이 난무하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 주총이 열린 퀘스트 센터는 거대한 쇼핑몰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일단 주주총회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주총장을 비롯해 오마하 시내 어디에서든 버핏이나 버크셔의 계열사와 관련한 물품을 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총의 첫 행사인 칵테일 파티가 열리는 곳이 보석 전문 도매업체 보샤임이라는 점은 주주총회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있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보샤임에 나타난 주주들은 너나 할 것없이 보석이나 시계, 잡화류를 삽니다. 주주들에게 공짜 저녁과 주류, 30%의 할인 혜택을 부여하지만 공짜 저녁만 먹고 물건을 사지 않고 돌아가는 투자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주주들을 쇼핑으로 인도하는 겁니다. 할인을 해 준다지만 보석류의 원래 가격이 비싸다는 점을 감안할 때 투자자들로서는 상당한 지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날 저녁 행사는 네브라스카 퍼니쳐 마트에서, 마지막 날 행사는 다시 보샤임에서 열립니다. 퍼니쳐 마트에서는 맛있는 바베큐를 단돈 5달러에, 마지막 날에는 근사한 브런치를 먹을 수 있지만 결국 가구나 보석을 구입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인지상정이죠.
물론 투자자들에 대한 버핏의 서비스도 확실합니다. 둘째날 투자자들과의 대화가 끝나면 버핏은 별도로 마련된 해외 투자자들과의 시간을 가집니다. 이 자리에서는 질의 응답이 오가지 않습니다. 행사의 핵심은 해외에서 오마하까지 온 투자자들이 버핏과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는 겁니다. 또 다시 주총을 찾거나 지인들에게 입소문을 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셈인 거죠.
하지만 주주총회를 빌미삼아 장사를 한다고 해서 누가 버핏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투자자들이 바보도 아닌데 과연 그걸 모를까요.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웃고 즐기고 버핏의 말 한 마디에 환호하면서 손에 들고 다니기 힘들 정도의 물건을 사 가지고 주총 장을 나섭니다. 투자자가 아닌 캐나다에서 온 한 기자조차 "주총이 아니라 사업이라는 것을 알고, 이번이 처음 온 것이 아닌데도 물건을 사게 된다"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최근 버핏을 제치고 세계 2위 부호가 된 멕시코의 거부 카를로스 슬림이 한 말은 버핏과 다른 부자들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슬림은 "사업가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가난을 비롯한 사회 문제들은 기부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며 기업가는 기부보다 기업 경영을 잘 하는 것이 사회에 더 공헌하는 길이라는 논리죠.
일면 맞는 말이지만 버핏이나 슬림과 같은 거부들이 현대 사회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씁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추구라고 해서 기업인의 존재 이유까지 100% 이윤 추구는 아닐 겁니다.
만일 버핏이 호화 저택과 요트를 가졌고, 연예인들과 스캔들을 일으키고, 부의 사회환원에 인색하다면 뻔히 보이는 장삿속을 마다한 채 주총에 열광하는 투자자들이 과연 생겨날 수 있을까요. 버핏은 기자들과의 회견 장에서도 예의 상속세 폐지에 반대의 뜻을 나타내며 "사회에 별다른 공헌을 한 것도 없는 자식들이 내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온당치않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버핏을 보노라니 왜 버핏이 `세계 2위 부자`와 `현인`이라는 수식어를 동시에 얻게 됐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주총장에서 발휘되는 상술마저 매력으로 비쳐지게 하는 것이 바로 버핏이 지닌 힘이자 버핏 식(式) 자본주의의 요체가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