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수도권 규제 완화 대책이 미뤄지는 것이냐‘는 질문에 내놓은 대답이다.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 발표가 기약없이 연기되면서, 굵직굵직한 'MB노믹스' 실천방안들이 줄줄이 폐지되거나 후퇴하고 있는 상황을 걱정하며 한 말이다.
현재 MB노믹스의 실천방안 중 이미 대운하 건설 공약은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일단 중단되었고, 공기업 개혁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특히 수도권 규제 완화는 '기업 규제를 완화해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이명박 정부 기본 철학과 맞닿아 있어, 향후 정부 정책의 정체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정권 출범 이후 수도권 지역 공장 신·증설을 검토했던 기업들이나 상대적으로 낙후된 수도권지역 주민들의 실망감도 커지고 있다.
◇ 왜 미뤄졌나
수도권 규제 완화 대책이 미뤄질 것이라는 조짐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정부는 지난달 11일 발표한 '기업환경 개선대책'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 대책들을 대부분 제외했다. 이미 실무적으로는 검토가 끝난 사안들로, '정책을 추진하느냐 마느냐' 결정만 남은 상태였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수도권 규제완화 대책은 광역경제권 개발 정책과 함께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개발 정책을 ‘패키지’로 발표해야, 비수도권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책 발표는 거듭 연기됐다. 재정부는 지난 3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광역경제권 개발 정책을 6월30일까지 내놓겠다고 발표했다가 6월에 이를 다시 7월 말로 연기했다.
당시 촛불시위가 확산되면서 반발을 살 만한 민감한 정책은 모두 발표를 보류하던 시기였다. 촛불시위가 장기화되면서 7월말 수도권 규제 완화 대책을 내놓겠다는 방침도 결국 철회됐다.
전국 13개 비수도권 광역 단체장,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지역균형발전협의체'의 압박도 있었다. 이 협의체는 “정부가 지역 대책없이 수도권 규제를 풀 경우 2500만 비수도권 국민들이 대규모 상경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 어떤 내용 담았나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은 서울, 경기도,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공장과 부동산 입지 규제를 푸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률상으로는 '수도권정비계획법' 상 각종 규제를 푸는 내용과 규제 일변도의 수도권 개발을 균형 성장으로 바꾸기 위한 새로운 제도(정비발전지구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여러가지 수도권 규제 완화 대책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두가지가 핵심"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수도권정비계획법 상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폐지 또는 완화하는 내용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 공장총량제는 수도권 지역에서 매년 새로 짓는 공장 건축면적을 총량으로 일괄 규제하는 제도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부는 또 수도권의 엄격한 그린벨트나 산지· 농지 규제를 완화해 낙후된 수도권 서북부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계획도 추진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를 통해 서민 택지, 장기임대산업단지, 실버타운 등에 공급할 택지를 마련할 계획이었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비발전지구제는 수도권 지역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지만, 수도권의 수요와 혜택이 가장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 재추진 여부도 불확실
현재로서는 수도권 규제완화 대책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수도권 규제 완화가 무기한 연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발표 계획이나 일정을 갖고 있냐'는 질문에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무적으로는 이미 검토가 끝난 사안인데도 대책 발표 시점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단 정부가 연내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생각은 접은 것으로 해석된다. 재정부 관계자는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은 올해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에서 빠졌다"며 "현재로서는 정책을 추진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못박았다.
또 다른 재정부 관계자도 "수도권 규제완화는 이미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조차 '이미 물건너 갔다'는 분위기다.
정책이 재추진된다고 해도 정책 내용중 민감한 사안은 제외될 가능성도 크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앞으로는 지역에 갈 기업이 서울로 집중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무조건 수도권 규제를 푼다는 계획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도 ‘조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실시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