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하이닉스 날자 배 떨어진다

  • 등록 2007-10-08 오후 6:37:19

    수정 2007-10-08 오후 6:52:40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대기업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은 흔히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둘은 '물과 기름'으로 표현될만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이다. 손을 잡기 보다 서로 다투거나 비난하는 게 더 일상적이다.

그런 시각에 길들여진 눈에는 대기업과 시민단체가 뭔가 같은 사업을 추진한다는 발표가 '보완'이나 '협력'보다는 '결탁'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8일 오전 서울 정동의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하이닉스와 환경운동연합의 공동 기자회견은 딱 그런 케이스다.

발표의 요지는 하이닉스(000660)가 환경운동연합이 선정한 전문가들에게 환경경영 상태를 진단받고 유해물질 관리 내역 등을 검증받겠다는 것. 환경경영을 외치지 않는 대기업을 오히려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유행어가 됐지만 자화자찬이나 자평 수준에 그치고 있는 환경경영의 실태를 객관적인 제3자인 시민단체에게 검증받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참석한 기자들의 질문은 둘이 손을 잡은 '진짜 이유'와 '숨겨진 의도'를 캐는 데 집중됐다. '하이닉스가 시민단체를 이용해서 이천의 구리공정 도입을 위한 여론조성 작업을 하겠다는 게 아니냐?'든가 "시민단체가 대기업이 비용을 지원하는 환경경영 검증에 나서는 건 수익을 염두에 둔 일종의 비즈니스 아니냐?'는 식의 냉랭한 질문이 쏟아졌다.

당연히 하이닉스와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은 두 손을 내저으며 해명에 나섰다.

"사실 하이닉스의 구리공정 문제가 걸려있어서 환경운동연합이 난처한 입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굳이 서둘러서 할 것 없다고 그쪽에 이야기도 했다. 그러나 환경경영을 위한 이런 투자는 사회적으로도 꼭 필요한 것이고 장기적으로 하이닉스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길이다." (김종갑 하이닉스 사장)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용기를 냈다. 기업들이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환경경영을 검증하는 일이 확산되면 환경경영을 감시하는 수준이 보다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이닉스 이천공장 문제와 환경경영검증위원회는 별개다." (장재원 환경연합정책위원장)

배 떨어지는 게 두려워 까마귀를 못 날게 해서도 안되고 갓끈이 흘러내렸으면 오얏나무 아래에서라도 단단히 고쳐 매야 한다는 주장이다. 달을 가리키는 데 왜 계속 손가락 끝만 보냐는 하소연도 담겨있었다.

대기업과 시민단체가 손을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얼레꼴레 하며 놀리는 건 유치한 시각임이 분명하다. 그들도 용기를 냈다니 보는 이들도 고정관념은 버리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몇가지 소심한 걱정들은 여전히 남는다.

'잘못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만 '잘못이 없음을 검증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환경운동연합이 하이닉스의 환경경영의 오점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이닉스 참 잘했어요'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다.

기자회견장에 배포된 예상 활동내역 자료에 '하이닉스의 환경보전 활동을 다른 기업/사회에 모범사례로 널리 홍보하는 웹사이트를 제작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도 이들의 성급함을 드러내는 대목이어서 아쉽다.

그동안 대기업과 시민단체가 서로 상극이었던 건 대기업이 액셀러레이터라면 시민단체는 브레이크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과속중이 아니라면 브레이크는 가만히 있는 게 역할이자 소임이다. 속도계가 아닌 브레이크가 발 밑에서 '과속 아님' 또는 '안전운전중'이라는 신호음을 삑삑 날려주는 건 어색함을 넘어서 당혹스럽다.

하이닉스의 환경경영 의지와 자신감을 높이 사면서도 환경경영이 '우량한 기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우량한 기업임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여전하다.

배가 떨어진 게 문제가 아니라 까마귀가 나는 모양새가 어색하다는 지적이고, 오얏나무 아래서라서가 아니라 갓끈이 잘못 매어진 걸 걱정하는 말이다. 달을 가리키는 데도 모두들 자꾸만 손가락 끝을 본다면 정말 손가락에 뭐가 묻었는 지도 한 번 더 살펴보는 게 지혜로운 이들의 선택이다.



▶ 관련기사 ◀
☞하이닉스, 시민단체에 환경감시 업무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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