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비주력 계열사나 사업부를 인수하는 ‘카브아웃’(Carve-out)딜에 대한 자본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형 매물 인수를 위해 대기업과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의기투합하는 ‘컨소시엄’ 형태에 이어 대기업과 PEF 운용사가 사고파는 카브아웃딜이 또 다른 형태의 협력 구조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평가다.
자본 시장에서는 대기업과 PEF 운용사 간 상호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거래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비주력 계열사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고 PEF 입장에서는 업사이드(상승여력)이 큰 매물을 인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브아웃딜로 맺은 대기업과 PEF 운용사간 인연이 이후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로도 이어지는 흐름에서 봤을 때 카브아웃딜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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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새해 들어 대기업과 PEF 운용사 간 카브아웃딜이 속속 마침표를 찍고 있다. LG그룹은 지난달 23일 주요 사업장의 건물관리 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 ‘S&I 엣스퍼트’ 지분 60%를 PEF 운용사인 맥쿼리자산운용(PE)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12월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이후 약 두 달 만에 자금 납입을 마친 것이다. 매각 규모는 약 3700억원 안팎 수준으로 알려졌다.
기간을 지난해까지 넓히면 글로벌PEF 운용사인 칼라일그룹(The Carlyle Group Inc.)을 새 주인으로 맞은 투썸플레이스나 알케미스트캐피탈파트너스가 인수한 SK TNS 등의 카브아웃딜이 체결됐다. 이밖에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형태는 아니지만 칼라일 그룹이 지난달 5일 현대글로비스(086280) 지분 10%를 6113억원에 인수한 것도 카브아웃딜의 성격을 어느정도 띄고 있다.
최근 수년간 M&A 시장에서는 대기업과 PEF 운용사들이 컨소시엄을 이뤄 M&A(인수합병)에 나서는 형태가 두드러졌다. 다자구도 인수 경쟁에서 다채로운 정보 공유와 전략으로 합리적인 인수에 나선다는 계산이 ‘연합군’ 전략으로 이어졌다. 배달앱 서비스 요기요나 국내 1위 보툴리눔 톡신 기업인 휴젤(145020) 인수 등이 대표적인 컨소시엄 형태 인수였다.
올해는 앞선 컨소시엄 흐름에 더해 대기업이 매각 테이블에 올려 놓은 비주력 계열사를 PEF 운용사가 인수하는 카브아웃딜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PEF 운용사 대표는 “운용사들 입장에서는 카브아웃딜이 매력적인 투자처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올해 좋은 매물이 계속 나올 것이라는 전망에 관심이 많이 몰리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유동성 확보·PEF는 성장 여력 높아 만족
상황이 이렇다 보니 PEF 운용사가 인수 이후 대대적인 개편 대신 조금의 개선 작업만 나서도 여러 면에서 몰라보게 좋아질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PEF 운용사 핵심 임원은 “실적이 전혀 나오지 않는 성장주 투자와 달리 카브아웃딜은 대기업 계열사로서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춰진 매물이다”며 “PEF 운용사들이 제일 자신 있어 하는 분야(마케팅·체질개선)를 통해 가시적인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공정거래 3법 개정 이후 대기업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이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기업 입장에서 이번 기회에 비주력 계열사로 유동성을 확보한 이후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화할 수 있는 새 성장 동력에 투자한다는 계산을 세우면서 카브아웃딜을 고려하는 곳이 늘었다는 논리다.
대형 매물 인수를 위해 의기투합하는 컨소시엄 형태와 더불어 자본시장에서 대기업과 PEF간 돈독한 관계를 다질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다. 카브아웃딜 과정에서 상호 의지를 확인한 만큼 추가 지분 인수나 프리IPO 형태 투자 유치에서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카브아웃딜로 대기업과 관계를 맺으면 향후 이어질 M&A와 관련한 논의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며 “운용사들도 이런 부분이 도움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