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인 LG전자와 KT측은 오래전부터 예정됐던 건이라며 지분 참여와의 연계 해석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양사의 "밀월관계"가 본격화되고 있는 신호탄이라고 분석, 한층 무게를 싣고 있다.
LG전자는 3일 KT의 차세대네트워크(NGN)사업의 액세스 게이트웨이 단독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이 사업은 KT의 구형 반전자교환기를 차세대네트워크로 교체하는 사업으로 LG전자는 상반기 물량 50만회선을 단독 수주했다.
지난달 31일에는 KT의 비동기식(WCDMA) 3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인 KT아이컴이 IMT-2000 상용 서비스 주장비를 제공할 예비업체로 LG전자 삼성전자 머큐리-노텔컨소시엄 등 3곳을 선정했다. 아직 예선통과에 지나지 않지만 여기서도 LG전자는 1위 성적을 올려 우선공급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KT아이컴은 이들 업체를 대상으로 내달중 최종 2곳을 장비공급 업체로 선정할 방침이다. LG전자 관계자는 "NGN사업과 관련한 장비 공급 규모는 300억원 정도이며 IMT-2000사업은 향후 진행상황과 시장규모에 따라 전망이 엇갈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IMT-2000 사업의 경우 KT아이컴의 장비공급 규모만 5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연발성 수주에 대한 LG전자 측은 "예정된 수순으로서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는 반응이다. KT 측도 공정한 "평가에 의한 결정"이라는 원칙적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차세대 네트워크 사업은 지난해에 이미 단독으로 심사에서 통과했었고 IMT-2000 사업 역시 지난해 사전평가 심사에서 1위를 차지했었다"며 이번 수주가 KT 지분 참여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번 수주 배경에 대해 LG전자의 기술력이 심사에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LG전자의 KT지분 매입이 윤활유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예상도 빼놓지 않고 곁들이고 있다.
업계의 한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LG텔레콤이라는 계열사를 뒀다는 이유로 KTF로부터 외면당한 LG전자가 KT지분 매입으로 인해 전략적 제휴업체로 위상을 바꾸게 됐다"며 "이같은 정치적 위상 변화는 기술력의 차이가 크지 않은 삼성과 LG의 경쟁구도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분석했다.
특히 삼성이 KT지분 매입에 소극적이었던 것에 따른 보이지 않는 반사이익도 LG전자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KT아이컴이 이번 장비 입찰에서 삼성을 2위로 밀어낸 것이 KT 지분을 사가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번 IMT-2000 심사에서 2위를 차지한 삼성전자의 입장은 앞으로 KT측의 의도에 따라 물량을 많이 받을 수도 있고 적게 받을 수도 있는 묘한 위치가 됐다. 1위와 거의 대등한 2위가 될 수도 있고 손가락만 빠는 2위가 될 수도 있다. 아직 KT아이컴이 "우선협상대상자가 전량을 공급하게 한다"는 방침을 밝히지 않은 것도 삼성이 지분을 사들일 경우 반대급부를 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
또 현실적으로도 SK텔레콤이 매각하려는 1.79%의 EB를 매입할 수 있는 곳은 삼성밖에 없다는 상황인식도 삼성과 KT가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옵션을 줄이고 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앞으로 있을 각종 장비 입찰에서 불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SK텔레콤의 KT 지분 일부 인수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LG전자는 IMT-2000 장비로 통신장비 사업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보이고 있다. 2.5세대 이동통신인 IS95c 관련 장비를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4000억원 이상 수주해갈 때 단 한 건도 공급하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했던 것은 너무도 뼈아픈 일이었던 것이다.
최근 잇딴 수주에 대해 LG전자 측이 "기술력의 차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기술적 자신감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KT지분 참여로 인해 LG텔레콤이라는 계열사를 둔 원죄에서 벗어났다는 정치적 자신감의 표출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삼성과 KT의 묘한 역학관계 속에서 통신장비 시장의 재탈환을 노리고 있는 LG전자에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즐거운 상황이 언제까지 주어질 지가 통신장비 시장을 바라보는 주요한 관전포인트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