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주요 회의의 '모두발언'(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회의의 전반적인 기조나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발언)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대통령은 이달 들어 두차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생략했다.
지난 3일은 대통령 취임 100일 째 맞는 날이었고, 24일은 청와대 2기 인적쇄신이 단행된 이후 첫 국무회의여서 대통령의 발언에 이목이 집중됐으나 대통령은 입을 굳게 닫았다.
정권출범 초기와 달리 대통령의 말, 그중에서도 불필요하거나 오해를 살 수 있는 발언이 가급적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도록 볼륨을 최대한으로 줄여 놓은 상황이다.
한달 전만해도 이렇지 않았다. 대통령은 취임 후 8차례의 국무회의를 주재했는데, 매번 현안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구체적인 지시와 언급을 쏟아냈었다. 5월 20일 국무회의에서는 17대 국회에서 한미FTA 비준을 독려했고, 같은달 13일에는 조류인플라엔자(AI)대책과 물가상승 등 현안을 자세히 언급했다.
◇ 대통령의 애드리브를 막아라
이처럼 대통령의 입을 막기 시작한 것은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의 즉흥 발언, 이른바 애드리브가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게 청와대 안팎의 분석이다.
지난 4월 26일 경기 포천의 한우농가를 찾은 대통령은 "일본 화우는 소 한마리가 1억원인데, 잘 팔린다"며 "한우농가를 방문해 보니, 수입해도 걱정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행사를 취재하던 기자들에 의해 이 발언이 전해졌다. 다음날인 4월 27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재정전략회의에서 쇠고기 시장개방과 관련해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들어올 수 있는 건 다 개방하는 게 맞다. 그 다음은 소비자 몫"이라고 말했다.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가중되는 시점에서 대통령이 쇠고기 문제를 단지 개방의 문제나 소비자의 선택 문제로 돌렸다는 점에서 여론이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5월 2일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은 촛불시위를 과격양상으로 격화시켰다.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옛날에 중지됐던 걸 재개하는 것인데 처음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역시 민심의 근본을 보지 못하고 책임을 과거 정권으로 돌리는 듯한 인상을 줬다.
지난달 7일 기독교 지도자와 오찬 자리. 이 대통령은 쇠고기 문제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탓하는듯한 발언을 해 또 파장을 일으켰다. 대통령은 쇠고기 문제에 대해 "그때(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에) 처리했으면 이런 말썽이 안 났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야당은 이에 대해 `어이없는 발언`이라며 대통령이 민심을 바라보는 안이한 인식에 경악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참모들 입장에서는 모두 대통령의 발언이 풀기자들에게 여과없이 공개된 경우에 생긴 문제들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것은 `값싸고 질 좋은 고기`발언. 대통령은 4월 21일 방일 중 도쿄에서 수행기자단과 가진 조찬에서 쇠고기 협상은 "도시 근로자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이고,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이라며 "오픈(개방)하면 민간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은 국민들의 건강 문제를 시장주의적 견해로 접근했다는 인상을 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통령의 지난달 19일 특별기자회견은 `뼈저린 반성`으로 말문을 열며 비장한 분위기로 회견문을 읽었다. 낭독 직후, 대통령은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됐을 때 정부대책을 묻는 질문에 "미국 정부가 약속하면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두고 검역주권을 빼앗겼다며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언을 미국 정부를 맹신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 특별기자회견의 취지를 무색케했다.
특별기자회견 이후 대통령은 말수가 확연히 줄었다. 대통령은 취임후 모두 8차례의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매번 모두발언을 통해 현안과 국정철학에 대해 언급하다 지난달 들어 두차례만 모두 발언을 생략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의 풀과 모두발언을 통해 현안에 대한 언급이 부쩍 준 것에 대해 "여러 경로를 통해 대통령의 언론 노출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