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군중 역학 전문가인 밀라드 하가니(Milad Haghani)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박사는 이태원 참사를 두고 “능동적인 모니터링과 통제만으로 이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는 3.2m, 길이 약 40m의 좁은 경사로에 몰려든 군중이 제때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1일 기준 이태원 압사 참사 사망자는 총 155명으로 늘었다. 희생자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하가니 박사는 430년의 역사의 학술 출판사 엘스비어(Elsevier)에서 발행하는 저널에 군중 안전 관련 논문을 다수 올린 전문가다. 하가니 박사는 이태원 참사를 두고 ‘군중 충돌(crowd crush)’ 현상을 소개했다. 군중 충돌은 많은 사람들이 밀집했을 때 통제력을 잃고 쓰러지거나 밟혀 넘어지는 현상으로, 군중 속 사람들은 과도한 압력으로 신체 부상을 입게 된다.
“1㎡당 8~10명 정도의 임계 밀도 수준으로 제한된 공간에 갇혀있을 때, 군중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면서 하나의 몸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신체 접촉은 매우 가까워서 어떤 지점에서든 난기류가 충격파처럼 전파되어 사람들이 넘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보면 마치 파도가 군중을 뚫고 전파되는 것 같습니다.”
하가니 박사는 이렇게 사람들이 끼어 파도치는 현상을 ‘군중 유동화’ 상태로 설명했다. 그는 “(군중 유동화가 발생하면) 실제로는 아무도 밀고 있지 않아도 군중 속 사람들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며 “이런 현상은 아무도 적극적으로 밀고 있지 않아도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군중 유동화 현상이 발생하면, 개인은 사실상 자력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이미 유동화가 진행되면 스스로 몸을 통제할 수 없어 군중에 따라 몸이 휩쓸리기 때문이다. 하가니 박사는 “주최측의 더 나은 관리로 이러한 종류의 사고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히 하가니 박사는 사전 계획과 위험 평가가 없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현장 통제’가 있었다면 이태원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봤다. 그는 “단순히 경찰과 통제 인력이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소한 CCTV로 밀집도를 실시간 모니터링해야 하고, 위험 수준이 되면 당국이 인파 유입을 멈추도록 개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것은 매우 간단한 해결책이지만 이런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전 관리를 위한 전문적 지식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하가니 박사는 “전문적인 영역에서는 CCTV 영상을 이용해 군중의 흐름과 밀도, 심지어는 군중의 ‘기분’까지 실시간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개입이 필요할 때 전문가에게 경고를 줄 수 있는 영상 처리 도구가 있으며, 이런 도구를 사용하는 군중 안전 관리 전문가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하가니 박사가 전하는 우려다.
“우리는 행사를 조직하고 계획할 때 안전과 인간의 생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더 많을수록 더 즐겁다’는 개념을 지난 수년간 이어왔습니다. 이런 사고는 너무 많이 ‘재발’했습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