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는 왜 이재명 도지사를 '저격'했을까?

이재명 “전국민 2차 재난원금” 주장에 홍남기 “책임 없는 발언” 저격
올해 국가부채 840조 육박…30만원 한번만 지급해도 15조씩 급증
홍 부총리 대권 경쟁자 이낙연 대표 총리시절 국무조정실장 인연
  • 등록 2020-09-04 오전 11:00:00

    수정 2020-09-07 오전 8:13:49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여당내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공개석상에서 ‘저격’(?)해 화제다. 지난달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재난지원금을 전국민 대상으로 수십차례 지급해도 정부 재정에는 문제 없다는 이 지사 주장에 대해 야당 의원이 “철없는 얘기 아니냐”고 동의를 구하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동조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홍 부총리가 이후 “경기도지사로서 책임 있는 발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며 “제가 어떻게 도지사에게 ‘철이 있다, 없다’를 말할 수 있겠나”고 수습 아닌 수습을 했다.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1,2위를 다투는 대선주자인 이 지사를 향한 홍 부총리의 날선 지적은 갑작스레 튀어나온 말실수일까? 아니면 의도된 비난일까?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 상태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관계, 대선 정국 등을 감안하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재난 지원금 100번? 국민 오해하게 하지 말라”

“예 의원님 저도 신문 보도상에서 들었습니다만 그거는 책임 없는 발언입니다.”(홍남기 부총리)

“아주 철없는 얘기죠, 그렇죠?”(임이자 의원)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국민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는 발언입니다.”(홍남기 부총리)

임이자 미래통합당 의원과 홍 부총리가 지난달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나눈 대화다. 임 의원은 이 지사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 30만원 정도 지급을 50번, 100번 해도 선진국 국가부채비율에 도달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홍 부총리의 견해를 물으면서 시작한 문답이다.

홍 부총리는 그동안 전국민 2차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줄곧 표명했다. 1차 재난지원금 결정 당시에도 끝까지 전국민 지급을 반대했다.

재정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3차 추경까지 감안한 올해 국가채무는 약 839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3.5%까지 늘어난다. 정부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GDP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45년에 정점인 99%까지 치솟게 된다.

국가부채 비율이 정점이 되더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급속한 부채 증가 속도는 결코 쉽게 볼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만약 이 지사 말대로 재난지원금을 전국민(5000만명 가정)에게 30만원씩 지급할 경우 15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10번만 지급해도 150조원이 필요한데 “50번, 100번 지급해도 된다”는 주장은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해도 재정부담이 크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해도 국민들이 오해할 수 있다는 게 홍 부총리의 판단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홍 부총리가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이 지사를 ‘저격’한 셈이 됐다. 이 부총리는 즉각 페이스북을 통해 “철들겠다”며 불쾌감을 토로했고 여당 의원들이 이에 가세해 홍 부총리를 비난하면서 논란은 커졌다.

홍 부총리는 지난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해명 기회를 얻자 “제가 어떻게 경기도지사에게 철이 있다 없다 이야기 하겠습니까”라며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경기도지사가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여러번 지원하도록 얘기하는 것이 책임 있는 발언은 아닌 것 같다는 걸 강조해서 말했다”며 이 지사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재정 허리띠 졸라매는데…지방비 두고 국비만 봉?

홍 부총리가 이 지사를 겨냥해 ‘책임 있는 발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 해석이다.

첫번째로 국가 재정을 동원한 재난지원금 지급에 지방자치단체장은 소위 ‘결재라인’에 들어가 있지 않다.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추경을 편성하려면 정부가 추경안을 편성하고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동의를 얻어 통과한다. 지자체장인 이 지사는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과정에서 어떤 책임도 권한도 없다는 얘기다.

여당에서는 ‘감히’ 선출직이자 차기 대권주자에게 임명직인 홍 부총리가 경솔하게 발언했다고 비판하지만 이 지사와 홍 부총리가 상하 관계도 아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기재부 장관이 법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일은 있어도 지자체장은 오히려 장관에게 예산 관련 협조를 요청하지 (선출직이라고 해도) 장관 위에 선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다.

유례없는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 지출은 급증하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지방재정은 여력이 있다는 상황도 홍 부총리와 이 지사의 관계를 불편하게 한다. 기재부내에서는 지자체장들이 부채 증가에 대한 유권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우려해 중앙정부에만 손을 벌린다는 불만도 있다.

2019년 기준 국가채무는 728조8000억원으로 이중 중앙정부 채무(699조원)을 제외한 지방정부 채무는 30조원이 채 되지 않는다.

특히 다른 지자체에 비해 경기도는 상대적으로 재정이 탄탄하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주요 산업 생산시설이 밀집한 덕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 등으로 인한 지방세 수입 증대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이 지사는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정부가 재원 조달을 국비 80%·지방비 20%로 정하자 국비로 100%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중앙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 지출을 꾸준히 늘리면서도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공무원 연차수당을 전액 삭감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지자체장이 국비를 동원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곱게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관가 시각이다.

이낙연(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가 지난달 30일 오전 경기도청에서 이재명 지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홍남기는 이낙연의 사람? 이재명의 이유있는 공방

이 지사는 지난 1일 추가로 페이스북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님께 드리는 5가지 질문’의 제목으로 공세를 이어갔다. 그는 자신이 경제·재정정책 대상인 경기도민의 대표이자 국민, 민주당원으로서 국가정책 결정과정에 의견을 낼 책임이 있다며 홍 부총리의 ‘무책임론’을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적을 두고 있는 이 지사가 현재 정부의 한축인 홍 부총리와 대립각을 보이는 이유는 앞으로 대선 정국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지사와 함께 여권의 대표 차기 대선주자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전 국무총리)와 홍 부총리과의 관계를 고려해 견제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 대표와 이 지사는 현재 민주당의 유력 차기 대권후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와 이 지사에 대한 선호도는 오차범위 이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 지사는 홍 부총리과 맞붙기 전에는 이 대표와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전국민으로 할 것이냐, 선별 지급할 것이냐를 두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이 대표는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게 지급하기보다는 선별 지원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이 지사와 이견을 나타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와 관계가 깊은 홍 부총리가 이 지사를 비판하자 즉각 반발에 나선 것이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이 대표가 총리로 있을 당시 홍 부총리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이 지사로서는 홍 부총리가 ‘이낙연의 사람’으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이 대표가 총리로 취임한 후 국무조정실장을 맡아 국정 수행을 도왔으며 이후에는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직에 올라 경제 현안 전반을 처리했다. 장관은 총리가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다시 말해 홍남기 부총리는 이낙연 대표가 추천해 선임됐다는 얘기다.

한편 당정 협의를 통해 2차 재난지원금은 지급을 하더라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 위주로 선별 지급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지급 불가를 고수하던 홍 부총리도 한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전국민 지급을 주장하던 이 지사에게는 판정승을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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