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호준기자]
통합거래소 이사장 선임이 정치권과 재경부, 증권 유관기관 사이의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했습니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 선물거래소를 통합해 한국 증권시장을 선진화하겠다는 애초 명분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습니다. 증권부 김호준 기자는 이 나라 정책당국이 증시 발전에 과연 관심이나 있는지 의구스럽다고 합니다.
`별다른 이권이나 권한`도 없는 통합거래소 이사장 자리를 놓고 청와대와 재경부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정치권에서 부산지역 표를 의식해 이사장에 앉히려 했던 인물이 최종 후보에서 빠지자 `공모 백지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공공연하게 나돌았습니다.
재경부는 청와대에서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을 제외하고, 자기 부처 출신으로 최종 후보를 선정했다가 공모 백지화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최종 후보로 선임된 이들도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사퇴한 상태입니다. 이사장 후보로 추천된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와 이인원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재경부를 통해 사퇴의사를 밝혔습니다.
재경부는 공식적으로 청와대 압력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여운은 남겼습니다. 이헌재 부총리는 정건용 전 총재와 이인원 예보 사장이 사퇴한 것에 대해 재경부 출신인 것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사장 공모 백지화에 대한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노동조합의 반응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렸습니다. 부산 출신 한이헌씨가 빠진 것에 대해 반기던 증권거래소는 통합거래소 출범 자체를 보이콧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강영주 현 증권거래소 이사장이 후보에 포함된데 대해 크게 반발했던 선물거래소는 반대로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앞으로 통합거래소 이사장이 누가 될 지는 그야말로 안개 속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나마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들이 대부분 물러나게 됐기 때문입니다.
통합거래소 출범 일정도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재경부는 애초 10월 출범을 목표로 했다가 증권 유관기관간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연내 출범으로 한발 물러선 바 있습니다.
지금은 연내 출범은 커녕 법정기한인 내년 1월28일 이내 창립도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이제 이사장 선임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합니다. 이 밖에도 통합거래소 정관 확정, 본부장과 임원 선임 등 조직인사, 창립총회, 법인등기 등 남은 절차가 산적해 있습니다.
사실 출범 시기는 크게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이사장 선임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이 통합거래소 출범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통합거래소는 애초에 많은 불씨를 앉고 출범했습니다. 통합거래소 본사를 부산에 두겠다는 것은 부산지역 민심을 고려한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습니다. 증시 발전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한 셈입니다.
재경부 역시 증권 유관기관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보다는 자기부처 출신을 이사장에 앉히는데만 골몰했습니다. 지난 8월 재경부 출신 통합추진반장이 불미스러운 사태로 물러난 이후 재경부는 서둘러 이사장을 뽑으려고 했습니다.
당시는 증권 유관기관들 사이에 시장본부별 권한 및 구조조정 등 쟁점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재경부가 팔짱을 끼고 있는 사이 이들 기관들의 반목은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됐습니다.
증권 유관기관들 역시 증시 발전에 초석이 되는 통합거래소 출범보다는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이사장 선임도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시장을 볼모로 한 파업도 불사했습니다. 이사장 선임 백지화에 대한 이들의 상반된 입장을 보면 마치 청와대와 재경부의 대리전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번 통합거래소 이사장 선임 과정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모든 고질(痼疾)을 한꺼번에 보여줍니다. 지역연고에 부처이기주의, 기관간 밥그릇 싸움, 그리고 정치적 이해까지..
정치권과 재경부, 증권 유관기관들이 이처럼 이전투구를 벌이는 한 통합거래소의 미래는 없습니다. 시장 운영기관의 효율화를 통해 증권시장 발전을 꾀하겠다는 애초의 설립명분은 내팽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청와대와 재경부는 왜 통합거래소 신설을 추진했는지, 증권시장 발전에는 과연 관심이나 있는건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