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돈 벌어 자녀에게…태국인 부부의 차디찬 죽음

  • 등록 2023-02-24 오후 2:04:55

    수정 2023-02-24 오후 2:04:55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불법체류자 신분이던 50대 태국인 부부가 전북 고창의 한 마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 안의 기름보일러는 비어 있었으며 가스를 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약 10년간 한국에서 일하며 태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돈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전북 고창군 흥덕면 한 마을에서 숨진 태국인 부부가 거주하던 단독주택 (사진=연합뉴스)
24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전북 고창군 흥덕면 한 마을 주택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이던 태국인 A(55)씨와 부인 B(57)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마을 주민들은 “기름 값을 아끼려고 이 작은 냉골 방에서 장작불을 태운 것 같다. 금슬도 좋고 무슨 일이든 만능이었던 부부였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두 사람은 10여년 전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고창군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조금씩 한국말을 배워가며 논밭일, 이앙기 작업, 포클레인 작업 등을 했다. 1인당 12~13만원, 악착같이 일한 이들은 태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돈을 보냈다고 한다.

24일 전북 고창군 흥덕면 한 마을에서 숨진 태국인 부부가 음식을 조리했던 흔적(사진=연합뉴스)
A씨 부부의 윗집에 사는 주민 백신기(68)씨는 “부부가 농사일이 끝나면 꼭 손을 잡고 마을을 산책하곤 했고 모은 돈은 태국에 사는 아이들에게 보낸다고 들었다”며 “외국인 부부가 열심히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백씨는 두 사람과의 일화도 언급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폭우로 논일 작업이 2시간 일찍 끝나자 B씨가 먼저 “10만원만 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이들 부부의 일당은 12만원이었다.

또 다른 주민 김용국(75)씨는 “부부가 방 안이 추워서인지 집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서 자고 씻을 때만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논밭 일은 물론 이앙기와 경운기도 능숙하게 다뤘고 주민을 보면 꼭 ‘사장님’이라고 불렀다”고 회상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부부가 연 30만원에 세를 주고 산 것으로 파악됐다. 기름보일러에 남은 기름이 없고 가스를 쓴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난방을 아예 안 한 것으로 보인다”며 “추위를 피하려고 방안에 장작불을 피웠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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