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삼성이 '두 괴물' 속에서 살아가는 법

  • 등록 2011-08-17 오후 3:21:31

    수정 2011-08-17 오후 3:21:31

[이데일리 이승형 기자] 가격비교사이트에서 찾아봤다. 삼성이 만든 2011년형 23인치 LCD 모니터는 20만원대 중반에서 팔리고 있다. 애플의 9.5인치짜리 아이패드2는 사양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80만~90만원대에서 가격이 형성된다.

같은 목적을 지향하는 제품도 아니거니와 그 크기로 비교하는 것 역시 단순한 발상이지만, 2배나 작은 물건에 4배나 비싼 값이 매겨진다. 이것이 애플이 만든 '부가가치' 의 힘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한 데서 오는 차이. 어떤 이들은 이를 소프트웨어 경쟁력이라고 부르고, 또 어떤 이들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칭한다.

전세계 전자업계에 애플이 가져다 준 '아이(I)'혁명의 충격이 현재진행형인 가운데 이제는 구글발(發) 여진이 약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그야말로 애플을 닮고자 하는 IT 강자들의 경주가 비로소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근사한 결합. 애플에 대항해 구글 안드로이드 깃발 아래 모였던 삼성,LG 등 국내 기업들의 등짝에서는 식은 땀이 흐른다.

이미 글로벌 IT업계는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3강 체제로 굳혀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처방전을 내리기에 바쁘다. 가까이서는 정부의 관련 예산이 형편없음을 탓하는 지적부터, 멀리로는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비판까지 실로 다양하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럴 때 일수록 선조들의 말씀을 되새김질해야 함을 느낀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말. 삼성은 애플과 구글이라는 두 괴물이 만들어 낸 생태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지금으로선 그 해답이 '균형자(均衡者)'의 역할에 있는 듯 하다. 이미 외신에서는 구글이 3년 뒤에는 애플의 아이폰처럼 독점 운영체제(OS)가 탑재된 스마트폰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제 안드로이드는 더 이상 무료로 쓸 수 있는 공짜 OS가 아니라는 말이다.

삼성은 구글을 서서히 멀리하면서 MS의 윈도우 OS 채용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 때문이다. 이들 괴물로부터 '푸대접'을 받지 않으려면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견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힘을 키워야 한다.

섣불리 덤볐다가는 과거 MS DOS에 대항해 IBM이 OS2를 만들었다가 참패한 전력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IBM은 그렇게 무너졌다.독자적인 플랫폼을 만들 역량이 될 때까지 참아야 한다. 균형자로서 틈을 엿보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처럼 10년 뒤를 내다본다면 지금은 독(毒)을 품고 인내할 시기다. 삼성이 '큰 그림'을 그린다면 애플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할 주인공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잽싸게 남들을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아닌, 창조해서 시장을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리더(Creative Leader)'가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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