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한은 금융안정 기능 대폭 강화 필요"(종합)

경실련 `경제위기와 한국은행의 역할` 토론회
국회 재정위 의원들 "한은에 금융기관 조사권 부여해야"
학계 "감독당국과의 정보 공유 해결이 우선"..조사권 부여에 반론
  • 등록 2009-04-21 오후 3:30:41

    수정 2009-04-21 오후 5:06:54

[이데일리 정원석기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국은행법 개정` 작업이 한은의 금융시장 안정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한국은행 설립 목적에 `금융안정` 조항을 추가하고, 제한된 범위에서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 조사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한은법 개정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와 금융감독당국을 중심으로 조사권 부여에 대한 반대주장도 힘을 얻고 있어 최종 결정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 "미시적 건정성 감독만으론 부족..거시 건전성 감독 체계 필요"

김종률 기획재정위 법률심사소위원회 위원장(민주당 의원) 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경제위기와 한국은행의 역할` 토론에서 “거시적인 시스템 안정을 위한 감독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에 책무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최근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을 볼 때 개별 금융기관에 대한 미시적인 감독은 작동하지만, 거시적인 감독이 취약하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며 “한은법 개정은 현재의 금융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지 여부를 두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법 개정에 앞장서고 있는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역시 “개별 금융기관에 대한 미시적인 재무적 건전성 감독에 치우친 현행 금융감독 체제로는 금융시장의 거시 안전성을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 때문에 한은에 제한적인 금융기관 조사권을 부여해 거시 건전성 감독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한은에 조사권을 부여할 경우 금융회사들이 이중 규제 부담을 받는다는 비판에 대해 “금융안정이 깨졌을 때 발생하는 비용을 금융기관이 이중으로 조사받는 부담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 아니냐”라고 반박했다. 

여야 의원들의 이같은 발언을 종합해 보면, 국회 재정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한은법 개정안은 금융안정을 위해 한은의 역할을 대폭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은법 1조 설립 목적 조항에 금융안정을 추가하는 동시에, 이를 현실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금융기관에 대한 서면·실지 조사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 "한은에 제한된 조사권 부여..조사대상 기관도 확대"

이 밖에도 한은이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금융기관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 한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던 제2금융권에 대해서도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셈이다.

김종률 의원은 "한은이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대상 기관의 범위를 박영선 의원 발의안에 나와 있는 금산법에 규정된 모든 금융기관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선 의원이 지난해 7월 제출한 한은법 개정안에서는 금융산업법에 명시된 450여개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한은이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이 밖에도 ▲비은행 금융기관의 지급결제 자금 부족시 자금지원 문제 ▲한은의 담보대출 대상 증권의 범위 확대 ▲증권대차제도 도입 ▲한은의 순익 적립금 비율 상향 ▲지준제도 개선 등도 이번 개정 법률 심사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다만, 한은에 금융기관 조사 권한이 부여되더라도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은 제한될 전망이다. 피규제 기관인 금융회사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조사권 행사 남용을 제한하자는 취지다.

김종률 의원은 "한은이 위기시 유동성 악화가 우려되는 은행을 직접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도 "평상시에는 금감원을 통한 공동검사를 통해 금융정보를 수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식 의원은 "한은에게 조사권을 주더라도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권한은 여전히 기존 감독기구에 있다"며 "금융기관의 검사권, 감독권에 대한 논의와 차별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 학계에선 의견 엇갈려.."기관 간 마찰 해소돼야" 의견도 나와

국회의원들이 한은에 금융기관 조사권을 부여하는데 대해 대체적으로 동의한 반면,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해 날선 공방을 벌였다. 금융감독원과 한은 사이에 정보 공유가 잘 안된다는 문제의식은 공유했지만 이에 따른 해법엔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최창규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과거와 달리 금융위기가 은행 외에 비은행 금융기관에서도 발생하고 있어 중앙은행이 비은행에 대해 정확한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대상을 확대하고 한은에 조사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건호 KDI국제경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은에 사실상 단독 검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론적, 현실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한은과 금감원 사이의 정보 공유가 안된다는 것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안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해소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역시 "한은의 검사권 논란은 법의 문제라기보다는 금감원과 한은의 기관간 마찰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인다"며 "이런 마찰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된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이 문제의 본질적인 사안은 최종대부자로서의 기능을 하던 한은이 최종출자자로 까지 역할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감독권한 중심의 논의 구도를 넓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편, 김종률 의원은 "오늘 부터 본격화되는 한은법 법률 심사에서 한은의 지배구조와 금융안정 기능에 대한 논의를 분리해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법 개정작업이 한은 총재 임기 연장 등의 논의보다는 금융안정 기능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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