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8번째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불패신화는 좀처럼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종전까지는 그저 집값이 가파르게 뛰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최근 인터넷을 보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강남 대치동의 아파트 한채를 팔면 프랑스의 고성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이 인터넷에 뜨면서 세간의 화제가 됐습니다. 20평도 안되는 강남 아파트 한채 가격이 예쁜 정원이 딸린 고풍스러운 프랑스의 고저택 가격과 맞먹는다는 내용인데요.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월등히 높은 뉴욕의 고급주택 등과 비교하니 국민들이 얼마나 높은 주거비용을 치르고 있는지가 한눈에 파악되더군요.
최근 출간된 <광기, 패닉, 붕괴..금융위기의 역사>라는 책은 거품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책에는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어떻게 형성돼서, 어떻게 터졌고, 일본은 물론 국제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
부동산 거품이 부풀어오르던 80년대말 일본 황궁의 땅값이 미국 캘리포니아 전체의 부동산 가치보다 컸다고 합니다. 면적으로 따지면 캘리포니아가 일본 황궁 대지의 수십억배에 달하는데 말입니다. 부동산 버블이 최고조에 달했던 91년 도쿄 23개구의 땅값이 미국 본토 전체를 사고도 남았다고 합니다.
80년대 일본 부동산 가격은 정말 무섭게 올랐습니다. '땅은 당장 더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공급이 제한적이다. 따라서 땅값은 항상 오른다. 땅은 좋은 투자수단이다' 이것이 속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됐습니다. 30년이 넘도록 다른 유가증권 대부분이 마이너스 실질 수익률을 보일때 부동산의 실질 수익률은 플러스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엔고 현상에 따른 수출기업들의 타격을 줄여주기 위해 금리를 낮추는 금융완화책을 썼습니다. 일본 은행들은 담보가치의 70%까지 대출해주었고 쉽게 돈을 빌린 투자자들은 마구잡이로 부동산을 사들였죠. 도쿄와 오사카, 삿포로, 나고야 등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200~900% 뛰었습니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는 것은 한순간이었습니다. 정부가 은행의 부동산 대출 증가를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하자 돈이 쉽게 돌지 않았고 은행들은 자금 회수에 나섰습니다.
부동산을 매입한 투자자들은 대출금을 갚기 위해 부동산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살 사람은 없었죠. 부동산 가격은 급속하게 떨어졌고 대출을 갚지 못한 투자자들의 파산이 이어졌습니다. 부동산 호황이 지탱하던 증시도 막대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일본 증시는 90년과 91년 각각 30%씩 급락했습니다. 은행은 대규모 대출손실을 입었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줄줄이 일본을 빠져나갔습니다. 자산가격이 폭락하자 사람들은 씀씀이를 줄였고, 중앙은행이 시중에 아무리 자금을 쏟아부어도 디플레이션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 경제는 이런 과정속에서 `잃어버린 10년`을 겪었습니다. 책을 저술한 저명한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일본의 거품붕괴가 이후 이어진 동아시아 금융위기와 미국의 IT 버블붕괴로 이어졌다고 주장합니다. 한나라와 국민만의 몰락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국민들에게까지 고통을 준다는 것이죠. 그는 "거품은 그 자체로는 지탱할 수 없는 가격변동이나 현금흐름을 동반하기 때문에 항상 터지기 마련"이라고 주장합니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상황이 어딘가 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은행들은 가격상승을 믿고 과도한 대출을 일삼고, 은행에서 나온 투자금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매물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구요.
정부의 대책이 시장에서 먹혀들지 않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단기처방이 화를 자초한 것인데, 와중에 극약처방에 대한 불안심리는 어느 때보다도 큽니다. 감독당국이 최근 방침을 번복한 주택담보대출 총량규제는 시장의 불안심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의 탐욕이 광기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게다가 국내 금융시스템은 일본의 그것과 아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국내 증시는 자산가격의 하락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동향에 매우 민감합니다. 이들이 불안한 조짐을 감지하고, 한국에서 손을 털고 나간다면 광기는 패닉으로 변하고, 패닉은 붕괴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파트 가격이 어느 정도여야 적정 수준인가에 대한 기준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빠른 속도로 오르다가 어느날 더 이상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부동산 불패 신화는 깨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부동산이 꺼지면 건설사가 망하고, 은행이 고꾸라지고, 증시가 추락합니다. 거품이 형성된 메커니즘이 일본과 유사한 만큼 꺼지는 양상도 비슷할 것입니다.
칼럼니스트의 지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동안의 양상을 살펴볼 때 이제 `잃어버린 10년`은 더 이상 남의 말이 아니게 됐습니다. 일본은 타산지석입니다. 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한채 부동산 광기가 더 이상 시장을 지배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IMF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느라 수년을 허송세월했는데 불과 몇년만에 10년을 또 잃어버린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