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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획자 류병학(47)씨는 “돈도 없을 뿐더러, 미풍양속을 해칠까봐 겁나서 도록을 따로 찍지 않았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미풍양속을 해쳤다고 경찰에게 혼날까봐 겁나서”가 맞다. 대한민국 형법 243조와 244조는 음란물을 유포·제작·소지·판매한 사람에게 1년 이하 징역 혹은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정하고 있다.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은 형량이 5~7년 이상으로 뛴다.
‘불량아트전’에 참가한 작가들을 가리켜 한 평론가는 “한마디로 ‘문제적 작가’들”이라고 했다. 가령 채희석씨는 2000년부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야한 사진을 다운 받아 포토샵으로 덧칠하는 작업에 골몰해왔다. 피카소, 마네 등 대가들이 그린 명화에서 등장인물의 옷만 벗겨내는 ‘명화 패러디’도 한다. 생계는 부업으로 해결한다. 이렇게 축적한 작품이 1000여 점인데, 자기 돈 내고 갤러리를 빌려서 작품을 걸겠다고 해도 선뜻 나서는 갤러리가 없어 8년째 전시회를 열지 못했다.
허리까지 말총머리를 늘어뜨린 전시기획자 류씨는 “그 사건이 성을 주제로 작업해 온 우리 나라 작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전시에는, 10대 자녀를 키우는 점잖은 대한민국 장년층이라면 저도 모르게 “이런 게 뭐가 예술이야!”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를 만한 작품도 여럿 걸렸다.
최씨는 이번 전시에도 여고생의 누드를 건다. 교복을 윗도리만 입은 여고생 옆에 ‘좌파여 궐기하라! 연대하라!’라고 적어 넣은 ‘여고생 노예’(2004년작)가 도대체 춘화(春畵·pornography)와 어떻게 다른지, 반발하는 평론가가 많다. 미술 평론가 강수미(40)씨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이 작가 작품의 역할이긴 하지만,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루며 ‘이래도 기분 나쁘지 않아?’ 하고 보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평론가 임근준(36)씨는 “예술의 형태를 한, 노골적인 남성 우월주의”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전시기획자 류씨는 “보는 사람이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통념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예술의 목적”이라고 응수했다.
‘통념에 대한 도전’이라면 안창홍씨도 지지 않는다. 안씨의 ‘휴식’(1997년작)은 아름다운 모델이 발가벗은 채 교태로운 얼굴로 작가, 혹은 관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유화다. 단, 모델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점이 ‘누드=아름다운 여자’라는 통념을 배신한다. 김난영씨가 내놓은 ‘화장품’(1997년작)과 ‘전구’(2004년작)도 경쾌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으로 각각 여성의 상품화를 풍자하는 성적 유머를 펼친다. 다음달 8일까지. (02)548-8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