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을 검열하라, 금기를 금기시하라, 두려움을 두려워하라

性的 상상력의 사회적 도전 … 연소자 관람불가 ‘불량아트전’
문제적 작가 6인… 음란물 판정받고 작품 소각된 前歷도
“경찰에게 혼날까봐 도록 안만들어…
검열·금기·두려움있는 사회에선 좋은 예술 안나와”
  • 등록 2007-03-20 오후 3:33:53

    수정 2007-03-20 오후 3:33:53

[조선일보 제공] 사이버공간을 비롯해 세상에는 성(性)이 넘쳐나지만, 전시장에 예술의 이름으로 걸리기엔 아직도 시기상조인가? ‘외설(음란물) 대(對) 예술’의 논란은 영원한 숙제인가? 이런 해묵은 물음에 도전장을 내미는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8일부터 한 달간 서울 청담동의 카페 ‘듀플렉스’에서 열리고 있는 ‘불량아트’전(展)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性)이 갖는 정치·사회·경제적 의미를 묻는다는 이 전시는 입구에서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안창홍(54)·박불똥(51)·최경태(50)·채희석(49)·김난영(43)·전지윤(35)씨 등 6명이 참여했다.

▲ 여고생의 성매매를 다룬 최경태씨의 유화‘B 01’(2006년작). 최씨의 작품에 대해 평단에서 찬반 논란이 거세다. ‘불량아트전’기획자 제공
이 전시회는 도록(圖錄)도 없다. 작품 목록과 작품 설명을 A4 용지에 프린트해서 플라스틱 용수철에 돌돌 끼워넣은, 전화번호부 두께의 전시회 설명서가 딱 한 부 전시장에 비치되어 있을 뿐이다.

전시기획자 류병학(47)씨는 “돈도 없을 뿐더러, 미풍양속을 해칠까봐 겁나서 도록을 따로 찍지 않았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미풍양속을 해쳤다고 경찰에게 혼날까봐 겁나서”가 맞다. 대한민국 형법 243조와 244조는 음란물을 유포·제작·소지·판매한 사람에게 1년 이하 징역 혹은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정하고 있다.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은 형량이 5~7년 이상으로 뛴다.

‘불량아트전’에 참가한 작가들을 가리켜 한 평론가는 “한마디로 ‘문제적 작가’들”이라고 했다. 가령 채희석씨는 2000년부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야한 사진을 다운 받아 포토샵으로 덧칠하는 작업에 골몰해왔다. 피카소, 마네 등 대가들이 그린 명화에서 등장인물의 옷만 벗겨내는 ‘명화 패러디’도 한다. 생계는 부업으로 해결한다. 이렇게 축적한 작품이 1000여 점인데, 자기 돈 내고 갤러리를 빌려서 작품을 걸겠다고 해도 선뜻 나서는 갤러리가 없어 8년째 전시회를 열지 못했다.

최경태씨는 지난 2001년 서울 모 갤러리에 어른들을 상대로 매매춘하는 여고생의 누드화 30여 점을 걸었다가 법정에 선 전력이 있다. 최씨의 작품은 당시 음란물 판정을 받아 모두 소각됐다.

허리까지 말총머리를 늘어뜨린 전시기획자 류씨는 “그 사건이 성을 주제로 작업해 온 우리 나라 작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작가들이 ‘혹시 내 작품도 소각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회에서는 절대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없어요. 예술은 불량해야 합니다. 사회 통념에 질문하고 도전해야 예술이에요. 이번 전시가 작가들의 ‘자기 검열’을 떨쳐낼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사실 이번 전시에는, 10대 자녀를 키우는 점잖은 대한민국 장년층이라면 저도 모르게 “이런 게 뭐가 예술이야!”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를 만한 작품도 여럿 걸렸다.

최씨는 이번 전시에도 여고생의 누드를 건다. 교복을 윗도리만 입은 여고생 옆에 ‘좌파여 궐기하라! 연대하라!’라고 적어 넣은 ‘여고생 노예’(2004년작)가 도대체 춘화(春畵·pornography)와 어떻게 다른지, 반발하는 평론가가 많다. 미술 평론가 강수미(40)씨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이 작가 작품의 역할이긴 하지만,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루며 ‘이래도 기분 나쁘지 않아?’ 하고 보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평론가 임근준(36)씨는 “예술의 형태를 한, 노골적인 남성 우월주의”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전시기획자 류씨는 “보는 사람이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통념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예술의 목적”이라고 응수했다.

‘통념에 대한 도전’이라면 안창홍씨도 지지 않는다. 안씨의 ‘휴식’(1997년작)은 아름다운 모델이 발가벗은 채 교태로운 얼굴로 작가, 혹은 관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유화다. 단, 모델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점이 ‘누드=아름다운 여자’라는 통념을 배신한다. 김난영씨가 내놓은 ‘화장품’(1997년작)과 ‘전구’(2004년작)도 경쾌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으로 각각 여성의 상품화를 풍자하는 성적 유머를 펼친다. 다음달 8일까지. (02)548-8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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