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반값 아파트`. 정치권에서는 반값 아파트가 모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줄 획기적인 대안처럼 떠들어대고 있지만 알고 보면 선거철 단골 메뉴 가운데 이토록 자주 나온 메뉴도 드뭅니다.
반값아파트가 대선 공약으로 처음 등장한 건 15년 전 고 정주영 후보 때였습니다. 17대 대선에선 이회창 후보가 아파트 값 30% 인하 공급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지난 대선에서는 정몽준 후보가 부친이 내세웠던 공약을 다시 들고 나왔습니다.
이번에 반값 아파트가 다시 정치권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내년에 있을 대선을 겨냥한 노림수라는 게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대선에서 반값 아파트가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데는 집값 폭등에 진절머리를 느끼는 서민들에게 이 보다 더 파괴력이 큰 구호가 없기 때문입니다. 집값이 안정됐더라면 결코 설 땅이 없었을 반값 아파트가 다시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비애감 마저 듭니다.
여하튼 15년 전 정주영 후보가 낙선하면서 객관적인 검증절차까지 묻혀 버렸던 반값아파트가 내년에는 시범적으로 도입된다고 하니 정주영 회장이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요.
다만 요즘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걸고 있는 반값 아파트는 예전보다 더 대중에 영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땅이 없고, 돈을 누가 댈 것인가 등의 난제가 있지만, 정부나 여당, 야당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는다면 결코 해답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참여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주거 안정 차원에서도 반값아파트 공급은 충분히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여, 야 모두가 반값 아파트가 폭등한 집값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모든 정책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것은 뒷전으로 넘긴 지 오래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예컨대 토지 임대부는 땅을 장기임대로 빌리는 방식입니다. 부동산을 자산으로 후대에 넘겨주거나 노후에 기댈 언덕으로 여기는 국내 현실과는 동 떨어진 셈입니다.
참여정부는 2012년까지 국민임대주택(30년 임대) 100만 가구를 짓기로 했고, 현재 40여 만가구가 공급됐습니다. 하지만 반값아파트가 본격 시행되면 국민임대주택을 지을 재원이 고갈될 수 밖에 없어 반값 아파트도 살 돈이 없는 서민들의 주거 안정이 뿌리채 흔들릴 수 있습니다.
모처럼 집값 내리기를 화두로 정치권에서 치열한 정책대결이 벌어지는 것에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기자 역시 현재의 집값이 비정상적이고, 누가 나서서 단숨에 이를 끌어내려주길 바라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집값을 단숨에 잡을 수 있는 묘약이란 없습니다. 더욱이 단숨에 잡혀서도 안 되는 게 집값입니다.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대선 때면 등장하는 `반값 아파트`가 이번에도 국민의 기대만 잔뜩 부풀렸다가 대선이 끝난 뒤에는 흐지부지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번에는 철저하게 검토해보고,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방안을 찾아서 제대로 해봤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디 다음 대선에는 `반값 아파트`라는 낡은 메뉴를 다시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소망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