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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8월은 일본에 있어 ‘패전에 대해 생각하는’ 달이다. 패전일인 15일이 되면 정치인들은 태평양전쟁 때 일왕을 위해 죽어간 213만3000여 명을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에 달려간다. 이런 모습은 ‘평화’, ‘잘못은 반복되지 않는다’ 등 구호와 함께 소비된다.
다만 그 기저에는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며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고, 지도부와 일반 국민들의 근본적인 책임에는 차이가 있다는 태도가 남아있다. 입으로는 반성을 외치지만 묘하게 유체이탈 화법을 쓴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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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일본 NHK에서 방영한 드라마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는 제목 그대로 전쟁 이후 현 시점 일본인들에게 ‘정말 어쩔 수 없었는가’라고 묻는 드라마다. 패전 직전인 1945년 5월부터 6월까지 발생한 미군 포로 8명의 생체실험이란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츠마부키 사토시와, 봉준호 감독과 <도쿄!>에서 호흡을 맞춘 아오이 유우가 각각 주인공과 그의 아내 역할을 맡았다. 일본 극단 초콜릿케이크의 후루카와 타케시가 각본을 썼다. 후루카와 작가는 “전쟁을 묘사하더라도 단지 일본이 호되게 당하고 큰 피해를 입었다는 측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전작에서도 아우슈비츠와 731부대 등을 고발해 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집단이나 조직 속 개인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아사히신문은 그를 향해 “‘어쩔 수 없었다’는 편한 말로 외면하려 하는 개개인의 전쟁 책임을 되묻는 것에 대한 집착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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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5월, 이 시점 도리이 타이치(츠마부키 사토시)는 큐슈 제국대학 의대생으로 등장한다. 후쿠오카현을 폭격한 미군 B29는 일본군에 격추돼 떨어졌고, 미군 8명이 포로로 잡혀 들어온다. 이들은 포로수용소로 가는 대신 도리이가 있는 큐슈대학으로 보내진다.
도리이는 살아있는 미군 포로를 대상으로 폐를 자르고 혈액 대신 바닷물을 투입하는 인체실험에 참가한다. 당시 일본에선 결핵 때문에 폐에 공동이 생긴 환자들이 많았지만 치료법이 없어 골머리를 앓던 터였다.
총상을 입긴 했지만 수술실로 걸어갈 때까지만 해도 의식이 있던 미군 포로들은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했다. 한 달간 이어진 생체실험에서 마루타가 된 이들은 모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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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뒤 생체실험의 배후로 지목된 도리이는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때 생체실험에 참여한 건 정말로 어쩔 수 없었던 일인가, 명령에 따랐을 뿐인 내게도 과연 죄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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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한 도리이 타이치는 토리스 타로라는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다. 패전 뒤인 1948년 열린 요코하마 전범재판에서 토리스 타로도 교수형을 선고받지만 이후 감형된다. “의료의 진보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던 교수는 재판 전 자살했다. 인체실험과 관계된 23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5명은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주연배우 츠마부키 사토시는 “평소에는 드라마 역할과 실제 인생을 구분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고 소회를 밝혔다. 극중 도리이처럼 자신도 결혼해 아내와 아이가 있기에 역할에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어쩔 수 없다’고 정리하면 과거가 돼 버린다”며 “과거를 과거로만 끝내서는 안 될 것들이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