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아일랜드서 사죄했지만…성학대 은폐 의혹 확산

프란치스코 교황, 세계가정대회 미사서 "용서 구한다" 사죄
미사와 함께 항의시위도 개최…"사죄로는 부족" 목소리 높여
美주재 바티칸 대사 "교황청, 성추문 혐의 알고 있었다" 주장
교황도 사실상 은폐 가담 의혹 제기하며 사임 촉구
  • 등록 2018-08-27 오전 10:06:36

    수정 2018-08-27 오전 10:06:36

프란치스코 교황이 26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 피닉스 파크에서 열린 세계가정대회 미사에서 신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사진=AFP PHOTO)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아일랜드를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 내 아동 성학대 문제에 대해 연일 사죄했지만, 아일랜드인들의 분노를 잠재우지는 못했다고 CNN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나아가 교황청이 오랜 기간 아동 성학대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은폐를 시도해왔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6일(현지시간) 저녁 더블린 피닉스 파크에서 열린 세계가정대회 미사에서 “교회가 피해자들에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정의와 진실을 보여주지 못했던 시간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며 “일부 교회 구성원들이 고통스러운 상황들에 침묵을 지킨 것에 대해서도 사죄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날 아일랜드에 도착한 직후 교회 내 성폭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면서 “치욕과 고통”이라고 자책했다. 이어 더블린 교황청대사관에서 90분 동안 성학대 피해자 8명을 직접 만나 기도와 함께 사죄의 뜻을 전했다.

이날 세계가정대회 미사에는 최대 50만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됐다. 교황이 39년 만에 아일랜드를 방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줄어든 인파다. 지난 1979년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당시 100만여명이 미사에 참석했다. 이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아일랜드인들의 불신이 그만큼 커졌음을 보여준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성폭력 피해자들을 치유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 달라”고 ‘훈계’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오랜 가톨릭 전통을 자랑하는 아일랜드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천주교 성직자들의 아동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지며 진통을 겪어왔다. 지난 2014년엔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수백명의 영아 유해가 무더기로 발견돼 아일랜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미사 개최 장소에서 불과 5km 떨어진 곳에선 가톨릭 성직자의 성폭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개최됐다. 시위 참석자들은 집단매장을 당했던 어린 아이들을 추모하며 미혼모들에 대한 학대 및 강제노역 문제 등과 관련해 교황청을 비난했다. 일부 시위자들은 “교황의 사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책임을 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CNN은 “교황의 용서를 구했지만 전례 없는 규모의 항의시위가 열리는 등 아일랜드인들의 분노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주재 바티칸 대사를 지냈던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는 이날 가톨릭 보수매체들에 보낸 11쪽 분량의 서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5년 전부터 시어도어 매캐릭 전 추기경의 잇단 성학대 의혹에 관해 알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교황은 나의 보고를 받은 2013년 6월 23일부터 매캐릭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매캐릭의 학대를 은폐한 추기경들 및 주교들과 함께 사임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교황의 퇴진을 촉구했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성폭력 은폐에 가담했다는 비가노 대주교의 폭로 이후 “교황청이 고위 성직자의 아동 성범죄를 숨겼다”는 의혹이 교회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투명성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져서다. 교황은 비가노 대주교의 서한과 관련해 기자들에게 “교회가 성숙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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