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부인과·정형외과도 금연치료 의료기관 지정
“현재 복용하는 약이 있나요?” “금연 치료제 복용 방법은 약국에서 알려줄 겁니다. 3일 정도는 입이 마르고 잠이 잘 안 올 수도 있어요.” 최근 기자가 금연 치료 프로그램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간 서울 성동구의 한 의원. 문진표 작성부터 내과 담당의 상담을 마치기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설명 내용도 금연 상담이라기보다는 약 복용에 대한 부작용 안내가 전부였다.
부실 운영의 첫 걸음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금연 치료 의료기관 지정이다. 치료 실적이 있는 7000여 곳 중에는 정형외과와 산부인과를 비롯해 경락(經絡) 치료 전문 한의원 등 금연 치료 전문성이 의심되는 병원들이 적지 않다.
건보공단은 금연 치료 의료기관 선정 시 진료 과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소속 의료진이 건보공단에서 제공하는 5시간짜리 교육만 이수하면 금연 치료 의료기관으로 지정해준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내과 병원장은 “24주 동안 총 12차례 상담하도록 돼 있다. 특별한 검진 등은 없고 간단한 상담을 하는 정도”라며 “처음 방문시 처방 약의 부작용을 설명하고 이후 금연 여부를 구두로 확인한 뒤 추가로 약을 처방해 주는 게 전부”라고 털어놨다.
7주 전부터 금연 치료를 받아오고 있다는 직장인 이모(28)씨는 “병원을 3번 방문할 동안 처방전을 받아 금연 치료약을 복용한 것 외에는 전문적인 상담은 전혀 없었다”며 “정부 지원 금연 치료라는 게 결국 ‘약을 먹고 알아서 끊으라’는 게 전부인 듯 싶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금연프로그램 효율성 제고를 위해 금연 치료 우수 기관 인증 및 금전적 인센티브 제공 등을 검토 중이다.
부실한 관리 탓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부 양심 불량 흡연자들은 지급받은 금연 치료제들을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팔아치우기도 한다. 5만원짜리 챔픽스(champix)의 경우 온라인 중고매장에서 3만~4만원대에 거래된다.
1인당 최대 100만원 지원…사후 관리는 뒷전
진료비와 약값, 사은품 등을 포함해 정부가 지원하는 금액은 1인당 최대 100만원 정도다. 지난해 2월부터 금연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정부는 금연 치료 프로그램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같은 지원에 힘입어 올 1월부터 지난달까지 금연 프로그램 참여자는 23만 8835명으로 이미 지난해 참여자(22만 8792명) 수준을 넘어섰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건보공단이 지원하는 금연 치료 프로그램은 국민의 세금 1000억을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물 쓰듯 하는 셈”이라며 “가난한 사람과 서민에게 걷은 담뱃세로 제약사의 배를 불리는 행태”라고 말했다.
주무기관인 건보공단 또한 금연 프로그램 운영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수천 곳이 넘는 병원들이 금연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하는지 일일이 관리·감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금연 치료 과정에서 전문적인 상담이 제일 중요하지만 의료 환경이 처방 중심이라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면서 “공단도 금연 프로그램 운영에 일부 부실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 금연 교육·홍보 등에 내실을 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연 프로그램 등 금연 사업에 투입하는 예산은 올해 1763억원에서 내년 1993억원으로 약 13% 증가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장기 흡연자 8000명을 대상으로 한 폐암 검진 시범 사업 시행 예산으로 29억원을 신규 배정하고 국가 금연 지원 서비스에 투입하는 예산을 1365억원에서 1480억원으로 약 115억원 증액한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