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백 속 8천만원 누가 먹었나

홍 모씨 "이강원씨에게 돈 줬다" vs 이 前 외환은행장, 전면 부인
  • 등록 2006-12-18 오후 10:03:21

    수정 2006-12-18 오후 10:03:21

[노컷뉴스 제공] "피고는 이강원 전 행장에게 현금 8000만원을 잘 봐달라며 건네준 적이 있나요?" "네. 전해줬습니다."

"피고는 홍모씨로부터 현금 8000만원을 외환은행 은행장실에서 받은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절대로 그런 적이 없습니다."

거짓말도 이 정도면 예술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서울중앙지방법원 311호실 피고석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지난 2003년 2월 28일 외환은행 행장실에서 벌어졌던 상황에 대해 전혀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다.

준 사람만 있고 받은 사람은 없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헐값 매각해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는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이 이보다 우선 기소돼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장성원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알선수재 혐의 첫 재판에서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다.

외환은행의 차세대 뱅킹 시스템 구축에 참여하려는 업체로부터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로 법정에 서게된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과 C업체 대표 홍모씨. 두 사람간의 거리는 불과 1m도 되지 않았지만 서로가 주장하는 진실의 거리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났다.

검찰은 C업체 대표 홍씨에게 지난 2003년 2월 외환은행 차세대 뱅킹 시스템에 자신이 대표로 있는 업체의 서버를 납품하고자 금품을 건넨 사실이 있는지 물었다.

홍씨는 강남에 있는 G백화점에서 97만원을 주고 외제 화장품을 구입한 뒤 화장품이 든 쇼핑백에 따로 현금 1000만원을 채운채 이 전 행장을 만났다.

홍씨는 첫 만남을 가진 외환은행 행장실에서 "처음에 빈손으로 오기 뭣해 사모님 화장품이나 선물로 사왔다"며 천만원어치 돈다발을 이 전 행장에게 건넸다고 시인했다.

이 밖에도 이 전 행장의 형에게도 지난 2003년 5월 2000만원을 현금으로 줬고, 같은해 6월에는 외환은행으로 이 전 행장을 찾아 다시 현금 5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건넸다고 술회했다.

5000만원을 건넬 당시 이 전 행장이 "지난번 것도 고맙고 형님을 도와준 것도 고마운데 뭘 또 사오시냐"고 감사를 표한 것 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홍씨의 주장에 대해 이 전 행장은 "홍씨가 자신에게 화장품을 준 기억은 잘 나지 않으며 돈을 받은 적은 전혀 없다"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홍씨가 무언가 부탁을 하지 않았냐는 검찰의 질문에 대해서는 홍씨가 IT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이 전 행장은 홍씨가 자신의 형에게 2000만원을 준 사실도 공소장을 보고 알았으며 홍씨가 5000만원을 줬다고 주장한 지난 2003년 6월달에 홍씨로부터 어떤 부탁을 받았는지도 기억이 안난다고 진술했다.

이 전 행장과 홍씨 둘 중 누가 뻔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겠지만 외환은행이라는 거대 국책은행장까지 역임한 이강원 전 행장의 기억력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란 점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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