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문병언기자]
최근 경제에 관한 최대 화두는 단연 하이닉스입니다. 해외에 매각하느냐, 독자생존을 모색해야 하느냐에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채권단은 반드시 매각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하이닉스 직원들과 소액주주들은 독자생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채권단은 현실에 바탕을 둔 반면 독자생존을 내세우는 쪽은 희망을 딛고 서 있습니다. 금융팀 문병언 기자가 하이닉스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희망 사이의 괴리를 짚어봅니다.
전날(2일) 미국 마이크론은 하이닉스 인수 협상을 철회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MOU 승인 시한이었던 지난달 30일 하이닉스 이사회에서 MOU를 전격 부결시킨 후 재협상을 모색하던 채권단으로서는 한 가닥 기대마저 날아가 버렸습니다.
채권은행의 한 임원은 "마이크론의 협상전략일 수도 있다"며 애써 믿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이닉스 이사회의 반란이 일어났을 땐 "큰일 났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소액주주와 노조측은 마이크론의 발표에 환호했습니다. 일단 매각반대 주장이 관철된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발이 센(?) 국내외 전문가 중에 매각이 무산된 하이닉스의 진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이닉스가 독자적으로 살아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분석 일색이었습니다. "하이닉스가 자폭을 선택했다"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면 줄곧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채권단의 현실론을 살펴볼까요. 채권단은 우선 하이닉스에 대한 추가 지원은 해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미 쏟아부은 9조원(전환사채 3조원 포함)의 회수조차 불투명한 상태에서 새로 돈을 집어넣을 순 없다는 거죠. 따라서 이미 설비투자에서 한참 뒤진 하이닉스가 경쟁력을 유지하긴 힘들다는 분석입니다.
또 하나는 실질적인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숱한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주인 없는 회사가 회생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얘깁니다. 하이닉스처럼 소액주주 비중이 90%에 달해서는 제대로 굴러가기 힘들다는 것이죠.
반대로 노조와 소액주주들은 마이크론에 매각하더라도 채권단이 손실을 보게 되는데 그만큼 부채를 탕감해 주면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는 채권단의 지원(부채탕감)을 전제로 한, 출발부터 이미 독자생존이 아닌 셈입니다. 또 D램 가격이 최소 4달러 이상 유지돼야만 하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조건의 호전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시장은 예측 불가능한 내일보다는 부정적일 지라도 확실한 오늘을 좋아합니다. 마이크론과의 협상 결렬후 채권은행들의 주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것도 여전히 불확실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채권단도 미래의 불확실성에 기대기 보다는 당장은 힘들더라도 손실을 확정하는 게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헐값매각 시비에도 불구하고 무리수를 두면서 매각을 강행했던 건 한푼이라도 더 건질 수 있는 최선의 카드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론에 절반을 손해보고 매각하는 것이 하이닉스에 부채 절반을 탕감해 주는 방안보다 남은 채권을 회수할 확률이 더 높다는 거지요.(그 이유는 다 아시겠죠)
일부에서는 하이닉스를 해외에 매각하면 첨단기술이 유출되고 반도체 강국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고도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하이닉스 매각을 주장해 온 채권단과 고위 관료들은 애국자가 아닐까요.
하이닉스의 경우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이후 3년여 동안 핵심인력 가운데 30%이상이 회사를 떠났다는 소식입니다. 싱가포르나 대만 등의 경쟁업체로 옮겨갔다는 겁니다. 이같이 핵심인력들이 회사를 등지고 있는 것은 하이닉스의 현실과 미래를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이닉스는 처리가 늦어질수록 기업가치가 떨어집니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제때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고철덩어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대우차와 한보철강 등에서도 체득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맡겨봐라"(소액주주)에 "더 이상은 못믿겠다"(채권단)로 대응하는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채권단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하이닉스를 처리하는 칼자루는 여전히 채권단이 쥐고 있습니다. 3일에는 우량, 비우량 사업부문으로 분할하고 구조조정 등을 추진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물론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도 해법을 내놓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같은 현실과 희망의 괴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매각해야만 된다" "독자생존으로 가야 된다"는 극단적인 대치가 아닌 양쪽의 이해를 절충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