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고 여유로운 미소에서 묻어나는 날카로움. 지난 9일 이태원동에서 만난 티싸 위재라트너 주한 스리랑카 대사(사진)의 첫인상이다. 사실 그는 한국과 별다른 인연이 없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 영국 등의 주요 국가들을 거쳐 지난 6월 말 주한 대사로 부임했고 그 전에 한국을 찾은 것은 고작 두 번, 그것도 모두 공무 수행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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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기 직전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스리랑카의 등급 전망을 상향했다. 그다지 주목받진 못했지만 2년 전 내전을 겪은 스리랑카는 모르는 사이 부쩍 크고 있었다. 내전 종료로 전쟁에 집중됐던 돈이 실물 경제 전반에 퍼지는 이른바 `평화배당금`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 것. 전쟁이 끝나자마자 스리랑카에는 외국인 투자가 물밀듯 밀려들었다.
"1948년 독립 후 절반의 기간 동안 내전과 분쟁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스리랑카 경제는 아주 조금씩 성장했고 내전 종식과 동시에 국가 신용도 급격히 회복됐죠. 일부 연구기관들은 스리랑카를 가장 빨리 성장하는 경제로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금융위기로)세계 경제가 침체할 때도 스리랑카 경제는 계속 크고 있었습니다."
"이미 반군 지도자들은 사라졌고 남은 세력들도 모두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져 다시 뭉칠 가능성은 없습니다. 평화가 지속되고 있는 셈이죠. 일례로 가장 최근 대선에서 5년 전보다 반군 출신들의 투표율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스리랑카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에서 기회를 찾는 기민한 주체들 속엔 물론 한국이 있다. 인도나 중국의 투자 규모가 이젠 한국을 크게 앞지를 만큼 커졌지만, 한국과도 여전히 교류가 활발해 각종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참여하고 호텔과 리조트 등에도 진출 중이다.
위재라트너 대사는 "아직 일본의 닛산이나 도요타에 대한 인지도가 높긴 하지만 한국차의 인기가 부쩍 커지고 가전이나 자동차, 모바일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한국 제품은 상당히 친근하다"고 말했다. 현재 스리랑카는 야심 차게 신항만 건설을 준비 중인데 여기에도 한국이 각종 도로와 컨벤션센터 건설 등에 참여하고 있다.
오랜 대화로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관광 인프라에 대한 질문을 살짝 넘어가려고 하는 순간 그는 자진해서 스리랑카의 관광 홍보에도 나섰다. 내전 영향 탓에 스리랑카 관광지는 국내외에서 모두 크게 부각되지 못했지만, 몰디브와 인접한 스리랑카에도 천혜의 자연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수많은 섬이 있다는 것. 세계문화유산기구인 유네스코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데만 8곳에 이른다. 그 역시 스리랑카를 방문하면 아름다운 해변을 꼭 들러볼 것을 권했다. 또 `칠전팔기` 끝에 평창 동계올림픽 꿈을 이룬 한국을 내심 부러워하며 관광산업만큼 큰 인프라 부담없이 발전 가능성이 큰 산업도 없다며 스리랑카도 머지않은 미래에 올림픽 유치를 꿈꿔 본다고 말했다.
◇ 위재라트너 대사는
티싸 위재라트너(Tissa Wijeratne·62) 주한 스리랑카 대사는 1980년대 초 스리랑카 외교부에 들어갔다.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ESCAP) 상주부대표를 지냈고 태국을 시작으로 중국과 영국, 미국 등 주요 국가의 대사관을 거치며 오랜 외교 경력을 쌓았다. 가장 최근엔 지난 6월 한국으로 오기 직전까지 2008년부터 스리랑카 대사관의 주미 외교사절단 부단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