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노대통령은 아파트 원가공개에 대해 "지금은 국민들이 제 생각과 달리 그건 다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바라고 있다"며 "저도 거역할 수 없는 흐름으로 본다"며 입장번복 비난까지 감수했었다.
그렇게 발표한 노 대통령의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확대` 검토 방침이 또다시 `없었던 일`로 돌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파트 분양원가공개 확대 `유효한 입장`
물론 청와대는 방침은 유효하다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19일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도입에도 불구, "노 대통령이 밝힌 민간 아파트 분양가공개 확대 검토 방침은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지만 다소 물러서는 듯한 모습이 감지된다. 윤 대변인은 `노대통령이 긍정적으로 검토, 추진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라며 물러섰다.
한달여전, 한명숙 국무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을 보면, 이러한 입장이 후퇴한 것인지 아닌지 알수 있다.
지난달 6일 시정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런 확대가 실질적인 분양가 인하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방향 바뀌나
우선 정부와 여당의 반대, 민간의 반발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당정이 지난 15일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키로 결정하면서, 분양원가 공개 확대 주장이 기반을 잃게 됐다. 곧장 후유증이 나타났다.
정부가 아파트 분양원가공개 확대 등 분양가 인하방안을 위해 건설교통부 자문기구로 설립한 분양가제도개선위원회 민간위원 4명이 지난 8일 위원회를 전격 사퇴해버린 것. 위원회 출범 한 달여 만에 좌초위기가 다가왔다.
이들은 분양원가공개 확대를 검토중인 와중에 당정이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결정, "자신들을 들러리로 만들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사퇴한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은 "분양원가 공개를 민간까지 확대하는 등의 원칙을 가지고 위원회 활동을 해 왔지만, 이에 반대하는 위원들이 많은 상황에서 위원회에 참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분양원가공개=전체 집값 하락` 논리에 무리가 있었다
간접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이유는 `분양 원가 공개=전체 집값 하락`으로 본 노 대통령의 인식 탓이라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공급위축이라는 부작용을 예상, 공공부문에서 좀더 많은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민간분야까지 공공분야가 공급에 나선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생각이었다.
지난달 16일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를 직접 규제할 경우 민간부문 주택 공급 위축 또는 지연이 우려된다"며 민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 적용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노대통령이 방침을 밝힌지 두달만이다.
특히 민간의 원가공개 확대가 기존 주택의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학계의 반박이다. 만일 주변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경우는 오히려 분양 시세차익만 보장해주는 꼴이 된다. 또다른 투기 소지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게 엄연한 부동산시장의 논리다.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분양가를 제한하면 주변의 다른 주택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된다"며 "똑같은 주택을 한쪽에선 싸게 판다면 시장의 가격결정 기능에 왜곡이 생길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간의 반대에도 불구, 현시점에서 정부의 분양가 규제는 타당한 면이 있다.
건설업체가 투기적 수요에 편승, 높은 분양가로 막대한 이익을 올린게 정부가 개입할 여지를 자초했다. 그렇지만 이런 규제로 투기적 수요까지 잡을 수 있다고 정부가 기대하는 것도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