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영 교수 | |
우리 사회의 공공갈등 해결 능력에 대해 이 경구를 적용해보면 어떨까? 우리의 현실은 그리 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과거는 차치하고 올들어 매스컴을 통해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공공갈등 사례들만 고려하더라도 회의적이다.
이런 현실속에서 우리 사회의 공공갈등 해결능력에 대한 발전 가능성과 밝은 미래를 이야기 한다면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몽상가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전이라는 것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이 되도록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기에 꿈꾸는 자는 꼭 필요하다.
단, 그 꿈은 현실을 직시하되 최대한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꿈이어야 한다. 또 비전이란 장기간의 발전 과정을 그려보는 것이어야 한다.
현실을 먼저 살펴보자.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어떤 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공공갈등 상황이다.
첫째, 무려 12년 동안 한 국가 전체에서 쓰레기 소각장과 같은 혐오시설이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지어지지 않았다.
둘째, 정부의 환경담당부처가 입법 예고한 법률의 80%가 기업 또는 환경단체들의 법적 소송에 휘말려 집행되지 못했다.
셋째, 큰 홍수 피해를 겪었던 대도시의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국가가 제안한 댐 건설이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려 15년 동안 지어지지 못했다.
이같은 현실은 우리가 지금 공공갈등조정에 대한 이론과 프로세스를 열심히 모방하려 하는 미국이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경험했던 바로 그 현실이다.
미국은 어떤 비전을 갖고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지금 각국이 배우고자 하는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는가?
물론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그러나 배울점은 있다. 그들의 40여 년이 채 안된 공공갈등 해결분야의 발전 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적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법적 투쟁의 소모적 비용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깨달음 ▲새로운 절차적 시도들의 실험 ▲1970년대초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공익 재단들의 각종 갈등 조정 실험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 ▲소수 실험들의 성공과 그 사례들의 점진적인 확산 ▲확산과 체험을 통한 새로운 방법에 대한 거부감 극복 ▲공공갈등 해결에 관심을 가진 전문가들의 등장과 그들의 갈등 조정력을 재고하고 유지하려는 노력 ▲정부의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인정과 제도화가 그것이다.
이 과정은 1974년 미국 워싱턴주 스노콜미 댐 건설을 둘러싼 공공 갈등에 대한 제3자의 조정 실험이 최초로 성공적으로 이뤄진 후 이 사례가 미국 전역으로 전파돼 마침내 미국 정부가 대안적 시도들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고 정부 각 분야에 공공갈등에 새로운 절차적 대안들을 적용하도록 하는 법안들을 제도화한 1990년대 초까지의 약 20여년의 과정을 요약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과정 중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실험들로 인한 시행 착오와 그 결과들을 철저히 분석해 다음 번 시도에서는 부족했던 부분을 극복하려 했던 의지다.
여러 번의 새로운 절차적 실험이 있었다. 공공갈등 해결에 관심을 가진 전문가들이 등장했고 관련 교육에 대한 수요도 점차 커지고 있다.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정부도 갈등관리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제도화를 시도했다. 다이내믹한 우리 사회 특성상 미국보다는 빠른 발전과정을 겪고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부족하다. 바로 성공 사례들의 부족이다.
또 실패를 경험한 소중한 실험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보완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새로운 실험의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 후 구태의연으로 돌아가는 반작용이다. 최근 한 유명 일간지 사설에서 댐 건설을 장기간 못하고 있는 정부를 향해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누가 반대한다고 하면 위원회부터 만들어 놓고는 ‘당신들이 알아서 결정해달라’고 하는 습관적인 ‘책임 떠넘기기 병’부터 고쳐야 한다.”
다시 한번 우리의 현실을 파악해보자.
갈등해결 능력이 미숙한 현실이 아니라 공공갈등 해결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하는 현실을 보자. 협상에 대한 책 제목도 `Arts and Science of Negotiation`이지 않은가?
이론만 가지고는 부족한 것이 바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공갈등 해결이다. 갈등관리 시스템이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특정 절차를 기계적으로 거치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그런 시스템이 절대로 아니다.
왜 그런 절차적 장치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기계적으로 일련의 절차를 시도할 경우 공공갈등은 해결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어려움에 대한 현실감이 없으면 다음과 같은 기대를 하게 되고,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위의 사설과 같은 비난을 하게 된다.
첫째가 이해당사자들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만 하면 모든 갈등이 예방되고 해결되리라는 기대이며, 둘째가 공공갈등 해결을 위한 `특별 위원회`만 있으면 갈등이 해결되리라는 기대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참여`라는 훌륭한 가치가 잘못 이해되고 집행되면 오히려 정책 수립의 요식행위로 사용될 수 있고, 위원회의 운영도 사소한 절차적 관리 잘못으로 갈등해결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협상`을 통한 공공갈등 해결을 위한 특별 위원회는 갈등 해결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지 갈등 해결로 이끌어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이해당사자들을 `어떻게` 참여시키고 `어떻게` 그 절차를 세심하고 주의 깊게 관리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여기서 소수 성공사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사례 모방을 통한 파급효과는 매우 크다.
그래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우선 하나만이라도 모방할 가치가 있는 성공 사례를 가져보자.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새로운 시도가 공공갈등의 해결에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당사자들과 사회 전반이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하거나 성공한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공공 갈등에 대한 Science 뿐만 아니라 Art도 가질 수 있다.
성공 사례가 태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선 정부는 일선에서 일하는 관료들이, 강제적으로가 아닌 그들의 신념에 의해, 공공갈등 해결을 위해 새로운 실험적 절차들을 시도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각종 실험의 무분별한 대량 생산과 그로 인한 많은 실패로 오히려 갈등 해결 절차에 대한 신뢰가 깨지지 않도록 선택적으로 지원해 주되, 성공 사례는 적극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실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행착오들은 학자들이 철저히 분석해 무엇이 잘못됐는지 분석함으로써 다음 번에는 더 나은 절차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자, 이제 다른 차원의 현실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공공갈등 해결 능력에 대해 조금은 허황된 비전을 이야기 해보자.
언젠가 (가까운 장래에) 아주 어렵게만 느껴졌던 공공갈등이 성공적으로 해결되는 사례가 발굴돼 전국으로 확산된다. 철저히 분석되고,이론화 되고, 다른 상황에도 적용돼 곳곳에서 유사한 성공 사례들이 보고된다.
시행착오를 거쳐 한국적 공공갈등 해결 모델이 이론적으로 개발되고, 다른 민주화를 이룬 개발도상국들이 경제발전 뿐만 아니라 공공갈등의 해결의 모델을 배우고자 한국으로 모여드는 비전을 가져보자.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다. 미국은 40년이 걸렸다. 우리가 얼마나 빨리 이런 성공을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김동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dykim@kdischool.ac.kr)
-前 미국 합의형성기관(CBI) Associate
-卒 미국 MIT대 공공정책 및 환경계획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