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우리 시대의 "4대 돈벌이 키워드"

  • 등록 2002-10-22 오후 3:35:58

    수정 2002-10-22 오후 3:35:58

[edaily 한상복기자] 지난 봄, 한 경제단체 회장이 ‘들쥐론’을 제기해 논란을 빚은 적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들쥐 떼 근성을 갖고 있다”면서 “좋다고 하면 충분한 검토도 없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시장을 어지럽히는 관행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극산 들쥐의 일종인 ‘레밍(Lemming)’을 지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레밍은 우두머리 집단을 항상 일사불란하게 따라 다닌다고 합니다. 기업 뿐이 아닙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업종이 장사가 좀 된다 싶으면, 구름같은 인파가 몰려 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도 주의(me­tooism)’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증권부 한상복 기자가 요즘 세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한 증권사 임원과 차를 마시다가 나눈 이야기 입니다. 이 분이 "우리 시대의 3대 돈벌이 키워드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화두를 꺼내더니 자문자답을 합니다.

"전 국토의 식당화, 전 국토의 러브호텔화, 전 국민의 공인중개사화"라고 합니다. 저도 그 분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만 여기에 "전 국토의 학원화"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의 4대 돈벌이 키워드"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전 국토의 식당화.

아무리 한산한 동네에 가더라도 한 집 건너면 식당입니다. 식당 사업이 만만하게 보여서인지, 아니면 장사가 잘 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퇴직금 받아서 식당이나 차리겠다"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곳, 여의도에도 증권사 퇴직 임직원 몇몇이 식당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찜닭이라는 음식이 조금 유행을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시들해졌습니다. 동네 어귀마다 찜닭집이 생긴 이후의 풍경입니다. 물론 명성을 떨친 몇몇 업소의 경우 아직도 손님들이 줄을 서고 있다지만, 뒤늦게 업소를 연 사람들은 돈만 쓸어 넣고 건지지 못하고 있으니 ‘막차’를 탄 셈이지요.

다음은 전 국토의 러브호텔화.

차도 옆에 빈 땅이 생기면 어김없이 건물이 들어섭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건물 모양을 보고 어떤 용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러브호텔입니다. 기가 막히게 장사가 잘된다고 합니다. 인천 근처의 어떤 지역을 지나다 보면, 동화에나 등장할 법한 멋진 건물들이 즐비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러브호텔 밀집지역입니다.

요즘 일부 부자들의 투자 포트폴리오 가운데 1순위가 러브호텔이라고 합니다. 체면 때문에 직접 운영은 하지 않고, 업자에게 내줘 월세를 받습니다. 그 월세의 규모가 월급쟁이들로서는 상상을 불허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목이 좋은 곳에서는 하루 10회전 이상도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공급이 이처럼 부쩍 늘었는데도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을 보면, 수요 역시 꾸준한 모양입니다.

전 국민의 공인중개사화.

얼마전 공인중개사 시험에서는 전례가 없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문제지가 모자라 일부 응시자가 발을 동동구르는 사고가 생긴 것이지요. 그럴 수 밖에요. 무려 30만명이 지원해 26만6000명이 응시했으니 말입니다. 지난 85년에 공인중개사 시험이 생긴 이래 최대 인원이라고 합니다.

특히 서울 경기 지역 응시자가 전체 인원 가운데 7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값 폭등이 공인중개사 붐을 일으키는데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도 아파트 주변에 널린 것이 부동산중개업소인데, 이번 합격자들까지 대거 업소를 차린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전 국토의 학원화.

서울 대치동 인근의 상가에서는 빈 공간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학원 때문입니다. 근처의 모든 건물에 학원이 입주해 있는데도 새로운 학원이 속속 문을 엽니다. 근처를 다니다 보면 학원 간판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서울 전 지역의 학생들이 대치동 학원에 다니기 위해 기를 씁니다. 방학 시즌에는 지방의 학생들도 몰려 옵니다.

대치동에서 시작된 학원 붐은 이제 강북 지역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면 가장 먼저 부동산 중개업소가 문을 열고, 그 다음이 학원 차례입니다. 강남에서 조그만 학원을 경영한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월수입이 2000만원을 넘는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전 국민의 사교육비 지출 규모가 1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국내총생산(GDP)이 250조원을 넘어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양상입니다. 학원도 모자라 이제는 초중고생을 해외연수시키는 프로그램이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4가지 키워드에는 다소의 과장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 보면 이같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현상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으려 합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조정을 거칠테니 말입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4가지 신드롬의 상당 부분에는 거품이 끼어 있다는 점입니다. 거품이 가실 때 얼마나 참담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지, 우리는 지난 97년말 이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골치 아픈데, 학원(또는 식당)이나 차려야겠다"는 푸념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학자의 강연을 들어보니 “레밍이라는 동물은 먹이가 부족하면 무리의 일부가 집단 자살함으로써 나머지를 살린다”고 합니다. 동화 ‘피리부는 사나이’에 등장하는 쥐들의 집단자살이 아마 이 부분을 묘사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학자는 “미천한 동물마저 종족 전체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경쟁을 벌이다가 함께 망하는 것을 보면,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 오묘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것은 우리 밖의 어떤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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