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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오르고 있음에도 가계·기업 등 민간신용이 줄어들고 있지 않아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한은이 올 1월까지 1년 반 동안 기준금리를 무려 3%포인트 올렸는데 경제주체들이 여전히 빚 무서운지 모르고 대출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가 몰고 올 후폭풍을 고려하면 빚의 부메랑이 금융시장을 흔들 위험이 커지고 있다.
◇ 디레버리징 못 했는데 금융불균형 확대 가능성
한은은 26일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9월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했다.
금융시스템 내 중장기적인 금융불균형 정도를 보여주는 FVI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전인 2021년 2분기 59.3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점을 찍은 후 올 1분기까지 7개 분기 연속 하락해왔었다. 그러나 올 2분기 43.6으로 전분기보다 0.3포인트 상승하며 8분기 만에 상승 전환했다. 가계·기업 빚이 증가하고 자산 가격이 오른 영향이다.
단기 금융불안 수준을 평가하는 FSI는 올 1월 22.1을 찍은 후 5개월 연속 하락하는 듯 했으나 8월 16.5로 두 달 연속 상승했다. 위기 단계인 22보다 아래이지만 주의 단계인 8을 훌쩍 넘고 있다.
금리를 3%포인트나 올렸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부채 디레버리징(감축)과 자산가격 조정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금융불균형까지 누증되면서 자산 가격 급락시 금융과 실물경제를 동시에 위축시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은은 “주요국 긴축 기조 속에 국내외 부동산 시장 위축, 경기회복세 지연 등 부정적인 대내외 여건들이 맞물릴 경우 금융시스템 내 잠재된 리스크가 현재화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대출 부실, 금융시장 내 자금 이동 등으로 금융기관 뿐 아니라 금융소비자도 신용 및 유동성 위험이 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금리 올라도 빚은 내고 본다
가계부채 비율은 101.7%로 전분기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4분기 만에 상승 전환이다. 여기서 가계부채는 자금순환표상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부채를 의미하는데 이들 부채는 2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1.3% 감소했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9년 1분기(-5.5%), 2분기(-1.3%) 이후 최대폭 감소다. 올 1분기에도 0.4% 감소, 2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2분기 증가하긴 했으나 1분기 감소한 상황에서 늘어났기 때문에 전년동기비로는 가계부채가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3분기에는 가계대출이 급증했던 터라 가계부채 비율은 3분기 다시 올라갈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부채 비율은 124.1%로 1.1%포인트 올라 5년 2분기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가계부채 비율은 장기 추세선(106.3%)보다 4.7%포인트 낮은 수준이지만 기업부채 비율은 무려 7.8%포인트나 높다. 성장 대비 기업 빚이 추세선보다 더 크게 증가했다는 얘기다.
기업부채는 2분기 전년동기비 7.7% 증가해 1분기(9.5%)보다 증가세가 둔화됐지만 전기·전자 등 주요 업종의 업황 부진 등에 기업의 재무건전성은 악화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기업의 신용위험이 높아졌다. 한은이 알트먼(Altman)의 케이-스코어(K-score II) 모형을 분석해 국내 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한 결과 부도위험 기업 비중은 올 1분기 17.3%로 전년동기비(15.6%)보다 1.7%포인트 상승했다. 케이-스코어가 마이너스(-) 2.3보다 작으면 부도위험 기업이고 0.75이상이면 정상으로 본다. 개별 기업의 케이-스코어 값을 통해 부도위험 기업을 분류한 결과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각각 1분기 14.8, 8.4로 전년동기비보다 0.4포인트, 1.2포인트 하락해 신용위험이 높아졌다. 매출, 이익 등 성장성과 수익성이 나빠진 영향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같은 기간 각각 16.4, 11.6에서 15.8, 11.3으로 하락했다.
한은은 금융불균형 확대를 축소하기 위해 정책당국 간 협조 및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부동산 시장 동향과 금융안정 상황에 맞춰 거시건전성 관련 조치를 재조정하고 취약 비은행에 대한 건전성, 유동성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중장기적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정착, 리스크 관리 강화 등 가계부채 누증을 억제하고 분할상환 확대 등을 유도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