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강신혜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세계 각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100만배럴 석유 감산에 최종 합의했다.
하반기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유가가 추가로 크게 오르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있지만 이번 결정으로 OPEC과 세계 주요 석유 소비국들간의 암묵적인 유가 안정 시스템이 붕괴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사실상 석유 때문에 이라크 전쟁에 뛰어든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는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유가 잡기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가솔린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더욱 다급해진 미국은 오랜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번 감산 결정을 사실상 주도함에 따라 유가 안정을 위한 외교적 노력의 목표를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로 돌리고 있다.
◆OPEC과의 암묵적 시스템 붕괴
최근들어 유가 부양에 모든 초점을 두고 있는 OPEC은 이번 결정을 통해 산유국들과 원유 수입국들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범위내에서 유가를 안정시키도록 설정한 시스템을 사실상 무시해버렸다.
OPEC은 지난 2000년 유가 관리를 위해 기준 바스켓 유가를 배럴당 22달러에서 28달러 사이에서 안정시키는 "유가밴드제"를 도입, 기준 유가가 목표 범위를 벗어날 경우 생산쿼터를 조절키로 비공식적으로 약속했다.
대신 주요 석유 수입국들은 OPEC이 시장 균형에 나서기 전에 미리 석유를 전략적으로 비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OPEC 바스켓 유가는 지난 83일 동안 상한선인 28달러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배럴당 31달러를 돌파했다. 사실상 OPEC과 주요 수입국들의 암묵적인 `유가밴드제`가 깨져버린 것이다.
런던 소재 글로벌에너지센터의 레오 드롤라스 이사는 "바스켓 밴드는 이미 옛날 얘기가 됐다"며 "특히 최대 산유국으로 OPEC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정부 수입을 맞추기 위해서는 최소한 배럴당 29달러의 유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OPEC은 최근 유가 급등세를 투기세력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실제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OPEC이 유가를 하향 안정시킬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투기적 세력의 활동을 막기는 힘든 상태다.
에너지 컨설팅업체인 피라에너지의 게리 로스는 "현재 뉴욕과 런던 시장에 약 150억달러 규모의 투기적 자금이 유가 선물시장에 투자돼 있다"며 OPEC의 이번 결정은 "투기세력들로 하여금 석유 시장에 계속 남아있도록 부추길 뿐"이라고 말했다.
◆급한 부시, 쿠웨이트에 손벌려
OPEC의 이번 결정으로 모든 주요 원유 수입국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사실상 석유 때문에 이라크 전쟁을 벌인 부시 행정부는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최근 미국 가솔린 가격 급등 문제가 대선 이슈로 급격히 부상하면서 부시 행정부는 감산을 이행하지 않도록 OPEC을 압박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OPEC은 감산을 강행, 부시 행정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동안 석유문제에 있어서 믿을만한 동맹국이었던 사우디가 매파로 돌변한 것은 큰 타격.
에너지 컨설턴트인 메디 바르지는 "사우디가 믿을만한 `비둘기`에서 `매`로 변했다"며 "사우디는 매년 늘어나고 있는 인구 때문에 점점 높은 유가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사우디에서 벗어나 최근 유가 안정을 위해 감산 연기를 주장했던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로 로비 대상을 바꾸고 있다.
백악관은 이미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에 대표단을 파견해 유가 안정 문제를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비OPEC 산유국들과도 접촉해 산유량을 늘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