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사회적 합의로 마련된 택배요금 인상분 사용처를 놓고 불거진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택배노조) 파업사태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계속 지나고 있다. 택배노조가 계약 관계상 실질적인 대화 주체인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과 대화를 시작했지만 합의점을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파업 60여일을 넘기면서 택배노조 위원장이 단식 끝에 병원에 이송되는 등 투쟁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출구전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 (그래픽=문승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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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주들과 비노조 택배기사들은 하루 하루 불어나는 엄청난 손실을 감당하며 모든 택배기사의 밥그릇을 깨부수고 있다며 택배노조를 비판하고 있다. 정부도 비판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작년까지 ‘사회적 타협’을 내세워 적극 중재에 나서는 모습이었지만 대선을 눈앞에 두고 중재에 나서길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수많은 상처를 낳은 택배파업은 대선이 끝나고 한참 뒤에야 실마리가 풀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노조-대리점연합 대화 나섰지만 3일 만에 ‘원점’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은 파업 60일째인 지난 25일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이 21일 ‘아사 단식’에 돌입하면서 파업 58일 만인 23일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사흘 만에 중단한 것. 노조는 원청인 CJ대한통운이 사실상 개입해 쟁의행위 일체 중단과 대체배송 조건을 다는 등 교섭상대인 대리점연합회 측에서 노조가 동의할 수 없는 안을 요구해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를 기습 점거하고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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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는 택배노조가 대국민 서비스 정상화를 위한 정상적인 요구조차 거부해 이제는 법률과 계약에 따라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대리점 차원의 파업 조합원 계약해제나 고소·고발 등 조치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대화 중단에 이르게 된 핵심 쟁점은 대체배송 허용 건이다. 대리점연합 측은 대리점 사장 및 직원, 비노조 택배기사의 대체배송은 합법적인 만큼 물리력을 동원하면서까지 방해하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택배노조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라고 규정했다. 또 택배노조의 요구인 계약해지 조합원 구제(복직), 모든 민·형사상 책임 면책 등에 대해서도 견해차가 크다. 진 위원장은 단식 6일째인 26일 고통을 호소하며 단식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국민 지지 없으니 ‘무리수’ 거듭…政·靑도 ‘남의 일’노조가 애초 무리한 파업을 벌여 무리수를 계속 두면서 사태를 미궁에 빠뜨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업의 명분과 국민 지지가 중요하지만 실제 여론은 파업을 일으킨 노조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다. 작년까지 ‘택배기사들이 이렇게 힘들게 일했나’라고 지지를 보냈던 국민들은 지난해 8월 경기 김포시 CJ대한통운 택배 대리점주가 택배노조원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기점으로 노조에 비판적이다.
또한 국토교통부가 택배 현장 점검 결과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음에도 연말 연초 성수기에 파업을 시작하자 ‘뜬금없다’는 반응이다. 특히 CJ대한통운 본사를 무단 점거하는 과정에서 회사 문을 부수는 폭력적인 모습과 여럿이 모인 점거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음주하는 광경이 포착되면서 국민 여론은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작년의 우호적인 국민 여론을 기대하고 파업을 시작했겠지만 지지를 전혀 받고 있지 못하니 ‘칼’을 뽑은 노조 집행부 입장이 궁색해졌다”며 “이어 사옥 무단 점거, 도심 게릴라성 집회 등 오히려 역효과만 초래하는 무리수를 자꾸 던지게 되고 악순환이 되면서 점점 출구 전략을 찾을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 ▲전국비노조택배기사연합 기사들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의 CJ대한통운 본사 불법 침입 및 점거 농성’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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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손을 놓다시피 한 정부당국의 태도도 문제다. 마침 대선 시즌과 맞물려 청와대, 정부, 국회도 이 문제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외면하다시피 하고 있다. 정부가 미온적이다 보니 불법 점거와 폭력사태가 발생하는데도 경찰은 보여주기 식 입건만 반복할 뿐 강경한 대응에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한 대리점주는 “본사에서 하루 10억~20억원 손실이라고 하는데 대리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을 지낸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택배기사들은 개인사업자에 가깝기 때문에 애초 노조 설립 요건에 맞지 않지만 이번 정부에서 무리하게 노조로 인가를 해준 것부터가 문제의 시작”라며 “법에도 택배기사들의 대화 상대는 대리점주라고 돼 있는데 원청에 몽니를 부리면서 점점 일은 꼬여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뜻 관철이 안 된다고 해서 재산권을 침해하고 폭력행위를 한 순간 노조는 냉담한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원청이 말이 안 통한다면 이제 대통령 멱살이라도 잡을 건가”라면서 “아무리 정권 말이라도 민간 기업과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파업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노조와 정부를 모두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