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73년 소띠를 추억하며 <정철우기자의 1S1B>

  • 등록 2007-04-26 오후 2:21:19

    수정 2007-04-26 오후 2:21:19

▲ 최원호 (사진=LG트윈스)
[이데일리 정철우기자] 얼마전 LG 투수 최원호와 '커브'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커브를 잘 던지기로 손꼽히는 투수다.

화제는 커브의 달인으로 불리는 배리 지토(샌프란시스코)의 투구폼 변신 시도부터 '커브의 던지는 법'까지 다양하게 이어졌다.

최원호에게 물었다. "커브를 잘 던질 수 있는 비결은 뭡니까." 그의 대답은 좀 의외였다. "여러가지 있겠지만... 워낙 어려서부터 던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우리때부터 리틀야구(초등학교 포함)도 변화구를 던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원호는 빼어난 투수가 많이 배출된 것으로 유명한 73년 소띠다. 박찬호(뉴욕 메츠 트리플A) 조성민(한화) 임선동(현대) 염종석(롯데) 손경수(은퇴) 등 쟁쟁한 이름들이 그의 동기다. 좋은 투수가 가장 많이 나온 시대 중 하나로 꼽힌다.

최원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원래 우리 리틀야구는 변화구를 못 던지게 했다. 그런데 국제대회서 대표팀이 변화구 못쳐서 망신을 당했었다. 곧바로 규정이 바뀌었다. 딱 우리가 투수 시작할 무렵이었다. 당연히 모든 감독들이 투수들에게 변화구만 원했다. 애들이 못 치니까. 손가락 하나는 직구,두개면 커브 사인이었는데 하나는 거의 본 기억이 없다."

듣다보니 다시 최원호를 포함한 그의 동기들이 떠올랐다. '73년 소띠' 투수들은 한때 화려하게 빛났지만 그만큼 오랜 기간 고생해야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위에 언급된 투수 모두 부상 때문에 적지 않은 시간을 고생했다. 대부분 어깨나 팔꿈치에 칼을 댄 경험이 있다.

어렸을때 갑자기 변화구를 던지게한 것이 꼭 부상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순 없다. 잘 관리해줘도 탈이 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몸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에이스 펠릭스 에르난데스(시애틀)는 만 16살때부터 구단의 집중 관리를 받아왔다. 마이너리그 시절 한솥밥을 먹은 바 있는 로마노(SK)는 "펠릭스는 어릴때 3이닝 이상을 못 던지게 했었다. 행여 다칠까 철저하게 관리받은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그도 부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에르난데스의 경우 처럼 투수의 부상은 투구폼을 포함한 매커니즘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73년생 소띠들의 부상과 변화구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채 여물지 않은 고사리 손을 승리를 위해 꼬고 또 꼬아야 했으니 그 팔이 온전했을리 없다.

또 '처음'이었다는 부분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변화구는 투구폼과 밸런스,힘이 갖춰져야 제대로 던질 수 있다. 73년생 소띠들이 변화구를 접했을 땐 미처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갖춰지지 않았었다. 그들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고교시절만 해도 동기들 중에선 가장 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찬호가 성인이 된 후 가장 빠른 공을 던졌으며 어깨나 팔꿈치 부상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린 시절 그보다 잘 던졌던 (에이스로 불리던)동기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초등학교때부터 줄창 손을 비틀어야 했지만 박찬호는 상대적으로 힘을 먼저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73년생 소띠들이 처음 험난한 어설픈 변화구의 파도에 내쳐져진 이후 리틀야구 제도는 여려차례 변화가 있었다. 변화구에 대한 부분도 그렇다. 지난해부터는 아예 변화구를 던지지 못하도록 다시 제한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73년생 소띠들도 아직 꿈을 접지 않았다. 예전처럼 빠른 공은 던지지 못하지만 그만큼 더해진 노련함으로 도전중이다. 일부는 순항하고 있고 또 일부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여전히 포기 보다는 도전에 무게가 실려있다. 우직한 그들의 발걸음이 후배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의 메신저가 돼 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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