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앞날은)⑦"죽이되든 밥이되든 빨리 결정해야.."

(현장르포)세종시 공사 일부구역 차질
남면·조치원 등 부동산값 `반토막`
주민들 "이젠 지쳤다. 실망감 팽배
  • 등록 2009-09-30 오후 2:18:45

    수정 2009-09-30 오후 2:18:45

[충남 연기=이데일리 윤진섭기자] "정부가 빨리 명확한 입장을 내놔야지유. 주민들 사이에서는 세종시가 이렇게 흐지부지 된다면 들고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해유"

지난 29일 찾은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 세종시 공사 현장은 굴착기의 굉음으로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덤프트럭에서 날리는 뿌연 먼지가 세종시의 앞날과 오버랩됐다.
 
해발 91m 높이로 세종시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밀마루` 전망대에 오르자 거대한 공사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분당의 4배 규모에 달하는 세종시. 터닦이 공사가 대부분 마무리된 이 곳에서 가장 빨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국무총리실·국무조정실 등이 입주하는 1단계 1구역(3만8000㎡)이다.

◇ 사업비 24.1% 집행 "지지부진"

세종시 건설 공사는 겉보기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2007년 7월 첫 삽을 뜬 이후 29일 현재 전체 사업비 22조5000억원 가운데 24.1%(5조4170억원)를 집행했다. 특히 올해 예산 5858억원 가운데 9월 현재까지 70.1%인 4107억원을 사용해 일부에서 제기됐던 공사 중단 소문을 무색케하고 있다.
 
▲ 세종시 전경

행정기관 중 가장 먼저 입주 예정된 국무총리실(2012년) 건립공사는 기초 공사를 마치고 현재 골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전체면적 1만3026㎟ 규모로 건립되는 이 공사는 현재 공정률이 40%선이다. 

▲ 세종시 1단계 1구역 중심행정타운 현장
강병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 대변인은 "정치적 이해가 엇갈리다보니 외부에서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공사 진행이나 실무차원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1단계 1구역 공사만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을 뿐 다른 지역은 사정이 다르다. 당초 1구역과 동시에 골조 공사에 들어가기로 했던 1단계 2구역 공사는 부지만 조성돼 있다. 학교·병원 등 세종시 내 기반시설 공사도 스톱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청 한 관계자는 "세종시 원안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데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세종시 성격이 확정될 때까지 기초 공사만 하고, 세종시의 성격이 바뀌면 그에 맞춰 건물 용도를 바꿀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단계 1구역 공사와 함께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는 곳이 세종시 첫 마을 조성사업이다. 대한주택공사가 조성하는 첫 마을은 올 3월 착공 이후 현재까지 42%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대형 크레인 5~6개가 작업 중이고 골조가 4~5층까지 올라가는 등 제법 아파트 모습을 갖추고 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분양될 예정이다.

▲ 세종시 첫마을 사업은 공정률 42%를 기록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세종시 시범지구는 건설사들의 해약이 이어지는 등 사업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민간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 사업은 계약해지가 잇따를 정도로 사업 자체가 불투명하다. 12개 건설회사는 2007년 11월 아파트 1만5237가구를 짓기 위해 토지공사로부터 중심행정타운 인근 시범단지 109만2323㎡를 분양 받았다.

당초 분양 일정은 올 4~5월이었다. 하지만 올해 분양하겠다는 건설사는 단 1곳도 없다. 일부 건설사는 중도금 납입을 포기해, 토공이 해약을 통보했다. 심지어 국무총리실 건축공사를 같이 하고 있는 S사 마저도 시범단지 중도금을 납부하지 않아 토공은 물론 건설청까지 나서 납부를 독촉하고 있다.

건설청 한 관계자는 "세종시가 정상적으로 추진되기는 힘들다고 보고 건설사들이 발을 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공으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 받은 A 건설사 관계자는 "학교, 병원 등 생활기반시설이 단 1곳도 갖춰지지 않고, 세종시의 미래마저 불투명한 상황에서 아파트를 지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중도금 미납을 이유로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고,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 부동산시장 직격탄 "반토막"

세종시 사업이 장기 표류하고 미래마저 불투명해지면서 부동산 경기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연기군 남면 세종공인 관계자는 "2년 전 남면 내 도로 인근 나대지 가격이 3.3㎡당 300만원을 호가했으나 현재는 3.3㎡당 200만원까지 떨어졌다"며 "한 때 3.3㎡당 60만~70만원을 호가하던 논·밭도 지금은 30만원 수준으로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세종시 일대 부동산가격은 사업이 표류하면서 급락하고 있다. 사진은 조치원읍 내 아파트

세종시 인근 조치원읍 부동산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조치원읍은 예정지 주민들의 이주 수요와 외지인 유입 수요 등을 고려해 신규아파트가 지어졌지만 대부분이 팔리지 않았고, 일부 단지는 아예 공사가 중단된 곳도 있다.

2007년에 대형 건설사인 G사가 분양한 아파트의 경우 입주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60% 정도가 미분양으로 남아 있고, D사가 분양한 단지는 계약자에게 계약금을 돌려주고 공사를 중단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특히 G사의 경우 입주 때까지 아파트가 분양되지 않자, 상당수 물량을 전세로 공급해 조치원읍 역전세난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조치원읍 내 대한공인 관계자는 "새 아파트 30평형 전세가격이 주변 시세보다 낮은 7000만원에 나오면서 기존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거 새 아파트로 옮겨갔다"며 "결국 이 일대 전세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다툼도 빈번했다"고 말했다.
 
새 아파트 프리미엄도 크게 추락했다. 현지 죽전공인 관계자는 "한 때 3000만원까지 육박하던 새 아파트 프리미엄이 현재는 프리미엄은 고사하고 분양가격에서 20~30%는 낮춰야 거래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행정도시 예정지 원주민들에게 주어지는 이주자택지 입주권, 일명 `딱지` 가격도 폭락했다. 토지보상 계약이 한창이던 2006년 초 개당 1억3000만원까지 거래됐던 딱지 가격은 현재 3000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하락한 상태다.
 
◇ 주민들 싸늘한 반응 "지쳤다"

최대 인구 50만명이 신규 유입될 것으로 예측되는 세종시 건설은 인근 주민에게는 사활이 걸린 사업이다. 이런 사업이 표류하고 급기야 계획 수정까지 불거지면서 주민들은 원망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충남 연기군 남면에서 만난 정모(54세, 남면 양화리)씨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을 철석 같이 믿고 있었는데, 당선된 후 이렇게 말이 바뀔 수 있냐"라며 "정치적으로 (충청도를)이용만 하는 정부가 원망스럽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주시 장기면 금암리의 한 과수원에서 만난 임모(60)씨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까지 내놓았던 원주민들 사이에 `충청도 사람들이라 또 무시당했다`는 말이 팽배하다"라며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이제는(세종시 이야기라면) 지긋지긋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특히 이 지역 출신인 정운찬 총리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금남면 인근에서 만난 이모씨는 "(정운찬씨가) 총리로 내정됐다는 소식에 다들 기뻐하고 신나서 현수막을 내붙였는데 정운찬씨가 첫 마디로 `세종시를 바꾸겠다`고 하자 다들  현수막을 걷어치웠다"고 말했다. 

이 씨는 "행정수도를 만든다고 해서 묘지까지 내줬는데 이 지역 출신 총리가 나서서 신도시 정도로 만들겠다고 하니,(정운찬 총리에 대한) 좋은 소리가 나오겠냐"고 덧붙였다. 
 
정부가 내놓을 세종시 자족 방안을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조성복(35.연기군 조치원읍)씨는 "행정중심의 세종시가 자족기능을 갖추기 위해선 상당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기업이나 벤처타운이 입주해 지역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진다면 세종시 계획 수정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세종시의 앞날을 결정해 줘야 한다는 게 주민 대부분의 목소리다. 남면 연기 3리에 거주하는 이연호씨는 "굼뜬 연기·공주 사람들도 미적거리는 세종시 사업에 `지쳤다` 라며 인내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정부가 세종시의 앞날을 하루라도 빨리 결정해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 `세종시 앞날은` 시리즈를 마치며
 
세종시 건설현장과 주변을 취재하고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선 총리로 취임한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의 대안으로 “과천 같은 도시로 만들지, 송도 같은 도시로 만들지에 대해 세심하고 넓은 고려를 해야 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정 총리의 발언은 경기도 과천처럼 중앙행정부처가 대거 옮겨가는 원안(행정중심형 도시)에서 인천 송도처럼 기업과 대학·연구소 등을 유치해 자족(自足) 기능을 보강하는 쪽으로 수정·추진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정 총리는 취임 첫날 사실상 '송도형(型) 국제기업도시 모델'을 세종시 대안(代案)으로 내놓은 것이다. 
 
세종시가 송도형 국제기업도시 모델로 확정되면, 일단 불확실성은 걷히게 된다. 세종시 건설의 정상화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변화가 충청권 주민의 상실감과 배신감을 얼마나 치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세종시 인근에서 만난 원주민들은 "충청도 사람들이라 또 당했다"라는 말을 했다. 
 
한 주민은 "여·야 합의까지 한 사업을 뒤엎는 게 말이 되냐"라며 "이런 식이라면 정권이 다시 바뀌면 세종시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연기군 남면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70대 촌로는 "손주, 손녀들이라도 좋은 집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조상 땅 다 내주고 고향(남면 종촌)을 떠나왔다"라며 "차라리 일가친척들과 농사지으며 오순도순 살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데...정부가 참 못할 짓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세종시의 대안을 하루라도 빨리 마련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나라 사업에 삶의 터전을 내준 이들에게 찾아가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 자세가 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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