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로 양궁 3관왕을 달성한 안산(20·광주여대) 선수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쥴리 벽화’를 향한 혐오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정치권과 연예계 내 설전으로 번지면서 특정 성별을 향한 혐오가 확산하는 가운데 외신들까지 ‘사이버 불링(온라인 학대)’이라고 비판하며 파문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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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남성 이용자가 많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안산 선수의 짧은 헤어스타일과 과거 SNS 발언 등을 지적하며 집단 공격이 가해지자 몇몇 외신은 ‘안산이 온라인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크게 보도했다. 안 선수는 과거 자신의 SNS에서 ‘웅앵웅’, ‘오조오억’ 등 표현을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페미니스트가 아니냐’라는 비난을 받았다.
‘웅앵웅’은 남성들이 말할 때 논리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를 뜻하는 일종의 ‘남혐’ 단어로 알려져 있다. ‘오조오억’은 2018년 ‘혜화역 시위’ 당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저지른 성범죄는 ‘오조오억’ 번이나 되지만 여성이 남성에게 저지를 성범죄는 한 번뿐인데 언론이 지나치게 이슈화시킨다”는 발언으로 ‘남혐’ 용어가 됐다.
안산 선수 논란이 불거진 지 며칠 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중고서점 인근에서는 이른바 ‘쥴리 벽화’와 관련, 특정 인물을 연상케 하고 조롱·혐오하는 낙서들이 도배됐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30일 “최근 스포츠계와 정치 영역 등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성 혐오적 표현이나 인권침해적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김모(31·남)씨는 “(쥴리 벽화와 관련해) 결혼하기 전의 일을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며 “안산 선수는 남혐 발언을 모르고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밝힌 한모(25·여)씨는 “(안 선수가) ‘쇼트커트(짧은 머리)’를 했다고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는 것은 미개한 일”이지만 “우월함을 드러내고자 남성 혐오 표현을 사용했다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주장했다.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는 사회가 됐다는 김모(28·남)씨는 “혐오 표현을 사용한 것을 언제까지 몰랐다는 핑계로 용납할 수는 없다”며 “혐오를 공부해야 혐오하지 않을 수 있는 시대”라고 했다. 김씨는 또 “‘쥴리 벽화’는 그저 여성가족부와 여권을 공격하기 위한 전략이자 한 개인의 인격권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안모(27·여)씨는 “혐오는 배제와 차별이 전제가 돼야 하는데 (안 선수가 쓴 표현은) 누군가 기분이 나빴다면 모욕의 언어일 수는 있어도 혐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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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혐오는 상대방을 비교·공격해야만 자기가 속한 집단이 우월하다고 느끼는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며 “내년 선거 때문에 정치권에서 집단 간 갈등을 부추겨 표심을 얻으려는 의도가 내재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쥴리 벽화’에서 ‘쥴리의 남자들’이라며 일부 정치인들의 이름까지 거론됐는데, 여성이 자신의 신체 자본으로 남성 권력자를 이용해 최종 목표인 ‘영부인’에 도달한다는 전형적인 ‘꽃뱀 서사’를 보여준다”며 “영부인은 성적으로 정결하고 도덕적이어야 하는데 완전무결한 자리를 넘보고 있다는 ‘성녀-창녀’ 프레임이 씌워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여성 혐오가 선거 네거티브전에 용인되지 않게 정치인 간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 봐라’는 식의 혐오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혐오가 또 다른 분야에서 재생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김 교수는 “경제 불황 장기화와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 등 사회에 겹겹이 누적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불만이 특정 대상을 통해 배설되면서 (안 선수를 향한) 온라인 학대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평·공정에 대해 모두가 충분히 소통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장애인·아동·노인 등 약자에 대한 혐오가 확대될 텐데, 이러한 문제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