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FX칼럼)환율 하방경직성의 배경

  • 등록 2002-09-30 오후 3:23:56

    수정 2002-09-30 오후 3:23:56

[이진우 칼럼니스트] 환율이 좀처럼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해외변수에 따라 하락출발 하더라도 상승세로 마감하는 날이 많고, 장 중 팽팽한 접전을 벌이던 롱(달러매수우위) 플레이어들과 숏 플레이어들 간의 싸움은 번번이 숏 플레이어들의 굴복으로 마감되는 장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왜 이렇게 환율이 아래쪽으로 밀리기 어려운지에 대해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 수급상의 달러공급 부족
그토록 졸졸 따라 다니던 달러/엔 환율의 장 중 하락세 또는 뉴욕환시에서의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달러/원 환율이 막판 숏커버링 유입으로 상승세로 마감되는 장세가 지속된다면 지금 서울 외환시장에는 샀다가 다시 팔아야 하는 달러매수세보다는 팔았다가 다시 살 수 밖에 없는 매도세가 많음을 인정해야 하겠다. 실수급에서 달러수요가 달러공급보다 우위에 섬으로써 투기세력들의 숏포지션이 적절히 채워지지 않는 데에 따른 현상이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지금쯤이면 수출업체의 네고물량보다는 수입업체들의 결제수요가 더 많을 수가 있다. 4월 이후 3개월에 걸쳐 환율이 급락하던 시기에 그러한 환율급락 자체가 달러공급물량이 대거 실렸기에 가능했던 만큼(그리고 환율의 저점이 확인되기까지 매수세는 뒤로 물러서 있었던 만큼) 지금은 반등국면으로 진입한 환율의 고점이 어디가 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자로 나서는 매수세를 받아칠 만한 물량이 부족하다. 대개 3개월 정도 결제를 유보하는 유산스(Usance) 방식을 택하는 우리나라 업체들의 외환매매 행태를 감안할 때 지금은 결제가 우위를 점할 만한 시기이며 유가가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는 와중에 주목받기 마련인 정유사들의 매수세또한 강화되고 있다.

고만고만한 업체수급으로 이뤄지는 시장이다 보니 외국인들의 직간접투자자금의 유출입 여부 또한 서울 외환시장의 중요한 변수인데, 최근 뉴욕증시의 추락과 함께 연일 거액의 주식 순매도 공세를 펼친 외국인투자자들의 달러 역송금 수요 또한 최근 환율상승의 중요한 이유로 부각된다. 10월 들어서는 은행권들의 DR 발행 및 유로본드 발행에 따른 달러공급요인이 부각될 수도 있겠으나 당장 시장에 들어올 물량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숏플레이어들이 환율반등 시점마다 일찌감치 백기를 드는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 엔/원 거래의 활성화
국내 주식시장 및 채권시장의 얘기를 먼저 해보자. 주식시장의 경우 작년 9월 11일의 전대미문의 테러사건 이후 외국인들이 주도한 급등장세가 이어지면서 막상 그들이 차익실현에 나설만한 레벨에서부터(아마 종합지수 800 정도가 아닐까 짐작된다) 국내 기관들과 개인 투자자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지수 1000은 물론이고 지수 1200, 1300도 별 조정 없이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장미빛 전망이 득세하였지만 막상 4월22일 연중 고점 943.53을 찍은 이후로는 하락세의 연속이다.

채권시장은 연초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모두 2002년은 금리상승의 해로 전망했지만 상반기에 이어 지금까지 채권공급물량의 부족현상과 금리스왑(IRS) 시장에서의 과도한 포지션 구축이 꼬이면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국내 경기지표나 물가불안에도 불구하고 채권수익률의 하락(채권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총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콜금리의 인상 필요성을 강하게 암시하지만 증시와 마찬가지로 다수가 몰려간 쪽으로 시장이 가주지 않음에 따른 후유증이 시장에서는 끈적끈적한 국채가격의 상승세로 나타나고 있다.

엔/원 환율의 전망에 관한 한 연초 일본과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을 따져 한국의 원화가 일본 엔화보다 강세를 띨 것으로 본 세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년 들어 엔/원 환율은 수 차례에 걸친 등락이 펼쳐지긴 했으나 100엔 당 1000원이라는 Critical level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그 와중에도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엔/원 환율이 잘 빠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줄 만한 움직임이었다.(아래 차트 참조)

(JPY/KRW Line Chart …9월 27일까지)             (차트 인용 : Telerate)


1020원 정도는 과도하게 높은 레벨이라는 인식이 여전하지만 980원 근처에서는 더 이상의 엔/원 추가하락도 여의치 않음이 확인되면서 1164원의 연중저점 터치 이후 반등국면에 접어든 달러/원에 대해서는 롱포지션을 구축하고 언제 다시 120엔 아래로 급하게 내려설지 모르는 달러/엔 환율에 대해서는 달러/원 롱에 대한 헤지 차원에서라도 숏(달러메도/엔화매수)을 노리는 방식의 거래가 최근 많이 이뤄졌다.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인 만큼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부 해외 펀드에서부터 시작된 기존의 엔/원 숏포지션 청산거래가 그 동안 철저하게 붙어 다니던 엔화와 원화간의 연계성을 희석시켰다면 그 이후의 엔화강세 와중에 펼쳐진 달러/원 환율의 상승은 위와 같이 달러매수/원화매도에 나서면서 엔화강세 전환의 리스크는 달러/엔 숏으로 나선 거래에 기인한 바가 크다.

요 며칠 사이 달러/엔 시장의 관심은 야나기사와 일본 금융상의 유임여부에 집중되고 있다. 은행권의 부실채권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적자금 투입에 대해반대입장을 취해 온 금융상 자리에 개혁성향이 강한 새로운 인물이 앉으면 부실채권 해결에 일본 정부가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고 월요일 오전 동경에서는 고이즈미 내각의 총사퇴에 따른 개각임박 소식에 121.80이라는 단단하던 지지선이 밀리며 달러는 엔화대비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1233원까지 치솟던 원화환율은 순식간에 1Big 이상 급락하는 달러/엔 환율에 대해 모르는척 할 수는 없었던지 다시 1228원대까지 상승폭을 줄이고는 있으나 대신 엔/원 환율은 달러/엔 낙폭에 둔감한 달러/원 환율로 인해 1011원대까지 올라섰다.

1010원대라는 엔/원 환율도 한국과 일본 양국의 경제상황을 비교하면 다소 높다는 생각을 가질만하나 이미 1020원이라는 레벨도 수 차례 보아 왔기에 작금의 엔/원 롱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불식되지 않는다면 엔화강세에도 불구하고 달러/원 환율의 하방경직성은 좀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렇게 구축된 엔/원 롱포지션 또한 어느 시점에선가는 반대거래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미 고점 근처에 가까워진 엔/원 환율의 급락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 불안심리와 내친 김에 좀 더 위로 가보자는 심리
최근 외환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불안심리는 다음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전쟁에 대한 불안감으로서 부시 美 대통령이 국제여론이 뒷받침되지 않는 가운데에도 집요하게 이라크와의 전쟁을 추진하면서 연내로 발발할 것 같은 중동지역의 새로운 전쟁 가능성으로 인한 불안감이다. 전쟁발발이 국제외환시장에서 글로벌 달러약세의 재현을 촉발할지라도 아시아권 통화들은 통상 그러한 시기에 달러대비 약세를 보여왔다는 과거의 경험에서 나오는 달러선호 심리라 하겠으며, 중동 지역의 전쟁발발은 국제유가의 급등세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전망이 그러한 불안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둘째, 뉴욕증시의 상승 다음날에는 소폭상승에 그치는 전강후약 장세를, 뉴욕증시가 하락한 다음날에는 개장 초 급락 이후 낙폭을 넓혀가는 최근 국내증시의 움직임이 또한 불안하다. 지금 국내증시의 회복을 기대하자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적극적인 매수주체로 떠올라 주는 방법 밖에 없는데 기술적으로 뉴욕증시는 하락 5파 내의 마지막 다섯번째 파동이 시작하면서 연일 저점을 새롭게 낮추는 형국이라 좀처럼 외국인 순매수 기조 하에 이루어지는 주식시장의 상승랠리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셋째, 해외 투자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인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요즈음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제반 기사들을 보면 불안감에 휩싸일 만 하다. 대선을 불과 두 달 여 남겨둔 상태에서 집권여당 측의 대통령 후보가 누구인지 조차도 아직 불투명하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정치분야의 극도로 혼미한 불확실성을 대변하고 있다. 시장은 악재의 노출보다 불확실성의 상존을 더 힘겨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미 현대그룹을 통한 정부의 대북지원 문제가 이슈화 된 상태에서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혼탁한 폭로전과 그에 따른 정치권의 이전투구가 예상되는 만큼 그러한 Political risk 또한 최근 원화의 절하추세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꼽자면 꼽을 수 있다.

수급상 달러공급이 수요를 압도하지 못하는 상황임이 확인되고 이런저런 불안 요인들이 시장에서 부각되기 시작하면 투기 세력들이 들러붙기 마련이다. 지난 주 칼럼에서 지적하였듯이 1228원은 기술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레벨이며, 이미 전주 환율 움직임에서 많은 시장참여자들이 그 레벨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일단 추세전환의 여부는 차치하고 1164원의 저점 기록 이후 반등국면에 접어든 환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따지는 데에는 흔히 피보나치 비율에 근거하여 엘리어트가 파동이론에서 제시한 38.2%, 50%, 61.8% 등을 의식한다.

1132원에서 1164원까지의 168원 하락폭에 대한 38.2% 되돌림 수준인 1228원의 돌파가 이뤄졌으니 확실한 매물압박에 따른 고점확인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50%(1248원) 되돌림 수준까지의 추가상승을 노린 롱플레이도 수긍이 가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은 숏플레이어들이 여간해서는 버티기 어려운 국면이며 장 중 재료에 따라 달러매도로 나섰다가도 막판까지 부족한 포지션을 채울 만한 달러공급이 여의치 않으면 약간의 달러/엔 반등세나 역외매수세 유입에도 숏커버링에 나서며 몸을 사리고 있다. 급한 환율의 하락반전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롱플레이어들의 “겁주기”가 통할 수 있는 상황이다.

◆ 계속 달러매수로 나서야 하나
아직 환율의 단기 꼭지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섣불리 매도에 나설 수는 없다. 그러나 단가 좋은 롱포지션을 들고있지도 못하면서 1230원 위에서 달러/엔 환율의 하락세 재개가 목격되는 와중에(지금 막 쓰는 중에 야나기사와 일본 금융상의 경질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경질이든 유임이든 개각의 결과가 나오고 달러/엔 환율이 다시 되튀어 오르면서 121.80을 못 넘어선다면 달러/엔 하락세는 보다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기술적 보조지표들이 달러과다매입 상태임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 추세만 믿고 공격적인 매수세로 나선다는 것도 이만저만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엔/원 환율이 980원대에서 1010원대를 넘어섰다는 것은 달러/엔 재료만 놓고 따졌을 때는 원화환율이 쓸데없이(?) 30원 이상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가나 환율에 통상 생기기 마련인 오버슈팅(Over-shooting)을 노리고 1240원이나 1250원 가까운 레벨을 향한 롱플레이에 나선다는 것이 필자 같이 소심한 사람으로서는 살 떨리는 얘기다. 자칫 “차익실현을 기다리는 세력들이 보기에 너무 이쁜 마지막 매수세”가 될까 우려되는 것이다.

화요일 밤 뉴욕에서 ISM 지수가 어떻게 나오며 그 때까지 미국 기업들의 실적전망은 어떤 양상을 보일지, 그에 대한 증시의 반응과 달러화의 반응은 어떠할지 하루 이틀 정도 지켜보고 방향성을 설정한 거래에 나서기를 권하고 싶다. 월요일 오전에 찍은 1333원이 단기고점이라는 뷰도, 결국 1240원이나 1250원까지 환율이 올라설 것이라는 뷰도 지금으로서는 자신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굳이 어느 쪽이든 포지션을 들고 있고 싶다면 추세반전의 확실한 신호가 나오기 전에는 일단 기존의 방향을 따르는 것이 맞다. 그러나 남들이 안 가는 쪽으로 열리기 마련인 “꽃길”도 머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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