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초로 기억합니다. 당시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38일만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됐습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두 형제의 비극적인 운명과 형제애를 담은 영화로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영화가 끝난 뒤 눈을 닦고 나오느라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당시 열렸던 2차 6자 회담은 북핵 해법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완전검증 가능한 핵프로그램 폐기를 내세웠고 북한은 미국이 말하는 불가침을 믿을 수 없다고 맞받아쳤습니다. 실질적인 회담 성과 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올해 추석 연휴에는 한 방송사에서 이 `태극기 휘날리며`를 방송하더군요. 실미도 북파부대원들 사건을 다룬 영화 `실미도`도 추석 TV 안방을 찾았습니다. 모두가 남북 분단의 아픈 현실을 담은 영화였습니다.
북핵 6자 회담 극적 타결 소식을 알리는 징조였을까요. 최근 극장가에는 반대로 남북 화해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선을 보이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강원도 첩첩산중 한 마을에 남과 북, 미군 병사까지 찾아들며 서로 마음을 열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린 `웰컴 투 동막골`은 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역대 흥행 4위에 올라섰습니다.
극장가에서 느꼈던 남북 화합의 메시지를 추석 연휴에 `북핵 6자 회담 극적 타결`이라는 큼지막한 선물을 받고 나니, 이런 소식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재구성된 듯한 착각도 느끼게 됩니다.
지난 2003년 8월 시작된 1차 6자 회담이 북핵 평화적 해결이라는 큰 그림을 내놓기 전까지 약 2년이 걸렸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6자회담의 결과는 불투명했습니다. 무산되는게 아니냐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실리는 분위기였습니다.
북한과 미국은 쟁점사항에 대해 한발씩 물러나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회담을 마친후에도 핵폐기가 먼저냐, 경수로제공이 먼저냐를 둘러싸고 다소간의 의견차이가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도 포괄적인 원칙에 합의를 했을 뿐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문득 문득 불거지는 `갈등의 앙금`처럼 말이죠.
이날 증시에서는 6자회담 타결이라는 훈풍이 투자심리를 가볍게 했습니다. 종합주가지수는 1190선에 올라섰고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6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한국증시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지속될 것이란 기대가 충만했습니다.
마침 이날 전해진 뉴스는 한국경제의 장래를 더욱 밝게 합니다. 투자회사인 어라이언스 트러스츠는 최근의 성장추세가 지속된다면 한국은 2050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 G8 정상회담의 회원국이 될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영화가 `꿈`을 실현시켜주기도 하지만 그 꿈을 잉태하는 것은 `현실`입니다. 화해 무드를 주제로 그린 한국영화에서 앞으로는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세계 중심으로 커가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북한의 핵포기와 미국의 불가침 의사 표명, 남한의 경제협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번 6자회담의 공동성명(Joint Statement)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렵게 이끌어낸 결과이니만큼 잘 키워가는 일입니다.
외교도 이번처럼 매끄럽게 하고 내부의 적인 보혁갈등도 잘 치유해서 앞으로의 실천과정도 공동성명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불어서 한국 경제가 에누리를 많이 당하지 않고 어디서나 환영받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시장과 함께 기대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