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edaily 지영한기자]
현대차(005380)의 인도법인인 현대모터인디아(HMI)가 성공을 거뒀다면 현대차의 중국 합작사인 베이징현대기차(北京現代汽車)는 이제 막 성공을 향해 발걸음을 뗀 수준이다. 그러나 벌써 성공예감이 느껴질 정도로 베이징현대차의 출발은 매우 순조롭다는 평가다.
3월 중순 봄기운이 완연한 중국 베이징시(市) 중심부에는 세계의 온갖 자동차 브랜드들로 넘쳐난다. 도심을 여러 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순환고속도로 위에도 세계 굴지의 메이커 차량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디자인을 뽐내고 있다.
모델의 종류도 제타·산타나·파사트·사라데·보라·어코드·레갈·알토·체리·코르사·웨곤R·폴로 등 셀 수도 없이 많으며, 이들의 틈바구니에선 쏘나타도 제법 눈에 들어온다. 마치 세계 자동차 열강의 각축장을 들여다 보는 듯하다.
중국 자동차시장은 정부나 국유기업의 수요에 맞춰 관용차 위주로 성장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주요 도시의 차급구성은 쏘나타급인 D 세그먼트(차급)나 그 이상인 E 세그먼트 등 고급차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모습이다.
요즘은 관용차 수요가 예전 같지는 않다. 그러나 크게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 투자기업이나 사영기업쪽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고, 개인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신흥부자들도 급증하면서 고급차 수요는 지속되고 있다.
경제가 고성장을 거듭하면서 중산층도 점점 두터워지고 있으며, 이들을 겨냥해 메이커들은 C 세그먼트 이하 소형차급의 신모델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증가율면에선 소형차급이 중대형 고급차를 크게 앞서고 있다.
기관마다 통계수치가 다르지만 중국자동차공업협회(中國汽車工業協會·CAAM)에 따르면 중국의 자동차시장 규모는 90년 50.1만대에서 ▲2000년 208.6만대 ▲2001년 237.7만대 ▲2002년 324.8만대 ▲2003년 439만대 등으로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 베이징올림픽(2008년)과 상하이엑스포(2010년) 등을 호재로 `중국경제가 향후 연평균 7~8%의 고성장을 거듭한다`는 단서가 붙지만 중국 자동차시장은 2010년께 승용차 500만대를 포함, 1000만대 시대를 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서성문 동원증권 수석연구원은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인구가 크게 늘어난 반면 2001년 WTO가입 이후엔 관세인하 등으로 차량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수요를 촉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베이징을 중심으로 쭉쭉 뻗은 고속도로가 말해주듯 중국정부가 밀어붙인 인프라구축이 성과를 거두고 있고, 자동차할부 등 예전에는 없었던 자동차관련 파이낸싱이 활성화되고 있는 점도 자동차시장 확대를 더욱 부추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시장환경이 유리한 상황에서 지난 2002년 10월 중국 베이징기차(北京기차)와 50대50의 합작으로 설립된 베이징현대기차(北京現代汽車)는 요즘 증설작업으로 정신이 없다.
올해 사업목표마저 대폭 상향된데다 생산라인을 늘리기 위한 증설까지 겹치다보니 이곳 주재원들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정도로 바쁘다.
베이징현대의 현재 생산능력은 15만대. 현대차는 2005년 20만대, 2006년 30만대까지 확충해 1공장의 증설을 마무리할 예정인데 30만대 체제는 2005년중 앞당겨질 수도 있다. 현대차는 또한 2007년부터는 20만~25만대의 제2공장을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1, 2공장의 증설이 완료되면 베이징현대의 생산능력은 50만~55만대까지 확대된다.
또한 베이징현대가 계획대로 오는 2007년 1공장 30만대, 2공장 15만대 등 45만대의 생산능력을 확보하면 도요타·포드·혼다 등 쟁쟁한 경쟁사들을 제치고 폭스바겐(현대차추정 136만대), GM(87만대)에 이어 중국내 생산능력 기준 3위 업체로 부상하게 된다.
물론 판매가 뒷받침되지 않는 증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베이징현대는 중국진출 초기부터 기대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2003년이 사실상 진출원년인 베이징현대는 작년 한해동안 거의 쏘나타 한차종만으로 5만2128대의 판매실적을 거둬들였다.
지난해 중국에서 7만대를 판매한 시트로앵은 당시 중국진출 12년차였다는 점과 비교된다. 올해로 중국진출 12년차를 맞은 일본의 닛산도 작년엔 7만대 팔았고 중국시장에 가장 순조롭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혼다도 5만대를 파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징현대가 올해 판매목표를 작년보다 3배나 많은 15만대로 올려잡아 주위를 더욱 놀라게 하고 있다.
당초엔 올 판매목표를 쏘나타 7만대,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XD) 6만대 등 13만대를 계획했다. 그런데 작년 12월말부터 소개된 엘란트라의 반응이 좋아, 엘란트라의 목표치를 8만대로 긴급 수정했다.
이같은 목표수정에는 상하이GM의 소형차인 `엑셀르`의 판매호조도 일정부분 반영됐다. `엑셀르`는 다름 아닌 한국에서 아반떼XD의 동급차종에인 GM대우의 라세티로, 중국내 소형차 수요에 힘입어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
베이징현대의 이강동 이사는 "2002년 북경현대가 진입할 무렵엔 중형차급인 D세그먼트 시장에 쏘나타를 우선 투입해 시장진입에 성공했고, 중산층의 자가용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C2 차급인 엘란트라를 쏘나타 후속으로 투입했는데 반응이 좋다"고 밝혔다.
실제 베이징시 외곽 썽홍두(勝鴻都) 딜러점에는 엘란트라가 100대 안팎이나 주문이 밀려있다. 차를 인도받으려면 두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딜러점 사장인 류언쑨(劉恩順) 총경리는 "엘란트라는 힘이 좋고 미국시장에서도 각광받는 모델이란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류 사장은 특히 "최근 자동차를 구매할 여력이 생겨난 북경시민중에는 대략 80% 가량이 가정용차량(B·C 세그먼트)을 선호하고 있다"며 "엘란트라는 이같은 수요를 반영해 판매가 더욱 호조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현대는 올 연말엔 틈새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을 겨냥해 SUV차량을 출시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매년 1개 차종을 중국시장에 선보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계획에 따라 2002년말 쏘나타, 2003년말 엘란트라에 이어 이번에 SUV를 출시하기로 했다.
베이징현대는 현재 `싼타페`나 `투싼`을 놓고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대차의 중국시장 전략이 최신 모델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인 만큼 신형 콤팩트(소형) SUV인 `투싼`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는 올해말 SUV가 출시되면 내년중 2만대 판매는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는 이와 함께 내년 하반기중에는 소형차도 출시, 2005년중 4개 차종으로 `B-C-D` 세그먼트와 `SUV`로 이어지는 강력한 라인업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어 2006년엔 쏘나타 후속을, 2007년엔 리터카를 출시, 전체 차종을 6개로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베이징현대는 이같은 사업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면 이르면 2007년께 중국 승용차시장 점유율이 10%에 도달, 2010년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톱 5` 목표 달성에 한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부르몽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봤지만 인도공장에서의 재기를 통해 용기를 얻었으며, 중국공장의 순조로운 출발을 통해 글로벌경영에 대한 자신감을 확인했다고 평가한다.
사실 현대차의 중국진출은 타이밍상 매우 절묘했다. 중국의 자동차수요가 2002년을 고비로 폭발했기 때문인데, 만약 중국행 막차를 탄 현대차가 이 때를 놓쳤다면 아마도 중국진출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베이징현대는 처음부터 순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