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李변호사의 세상보기] 변호사 새끼 대답해봐라

  • 등록 2011-04-25 오후 2:18:03

    수정 2011-04-25 오후 3:51:31

[이데일리 이경권 칼럼니스트] 의과대학 실습중에 있었던 일이다. 외과 아침 회진 때 병원장이셨던 교수님께서 임상 지식에 대한 질문을 하시면서 "야 변호사 새끼 대답해봐"라고 말씀하셨다. 잘 모르는 내용이라 가만히 있었더니 "그럼 그렇지. 네가 법이나 알지 뭘 알겠냐?"라고 하셔서 "네, 맞습니다"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었지만 수술실에서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굳이 `변호사 새끼`라고 해야 했을까? 어린 조원들도 있는데 30대 중반의 유부남에게…….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약자인 실습 과정의 의대생이고, 3D로 분류되는 일반외과 교수며, 원래 성격이 좀 거친 분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 후로 회식도 하고 밖에서 만나면 인사도 드리고 하면서 평범한 사제지간이 되었다. 일반인들이 타인으로부터 욕설을 듣게 되면 먼저 떠올리는 단어가 `모욕죄`다. 모욕죄는 친고죄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처벌이 많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생활 속에서 한, 두 번은 경험하는 일이고 대체로는 그냥 참고 넘어가지만 고소를 통해 처벌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처벌되는 경우에도 3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의 벌금형이 통상적인데 예상외로 대법원 판례들이 많다. 이는 당사자가 판결에 승복을 못한다는 반증이다.

모욕죄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사이버모욕죄` 입법추진 및 인터넷상의 모욕이라는 형태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임수경씨의 자식이 죽은 것에 대해 비방 댓글을 단 사람들에 대한 처벌, 문근영씨에 대해 색깔논쟁을 일으킨 지만원씨를 자신의 블로그에 비난하는 글을 올린 네티즌에 대한 처벌은 물론 그 유명한 진중권씨의 `듣보잡`사건 모두 인터넷상의 글쓰기를 모욕죄로 처벌한 경우다.

그런데 모욕죄를 꼭 처벌해야 할까?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순간적으로 감정섞인 말을 할 수 있다. 가시돋힌 말의 효과는 그 때뿐으로 하고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웃어넘긴다. 오히려 스스로 사회적 지위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이 많다.

실제로 일상에서 상시적으로 모욕을 당하는 사람들-상사에게 욕먹는 부하, 유흥업소업주에게 인간적 모멸감을 받아 자살한 여종업원,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 몸이 불편한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은 고소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한 사람에게 명예니 모욕이니 하는 것은 정말 딴 나라 얘기 아닌가? 실제 미국은 모욕죄를 처벌하지 않는다. 모욕죄를 처벌하는 독일과 일본도 처벌사례나 처벌의 강도가 매우 약하다. 독일의 경우 1960년대 말에 처벌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좁은 국토에, 그 마저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20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하다보니 서로 부딪히는 일도 많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다.

쾌적한 녹지나 완비된 운동시설이 충분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국민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술, 그것도 폭탄주를 많이 마시는 이유도 가장 짧은 시간에 스트레스를 풀려는 효율적인 행동방식이라 생각된다.

가장 인터넷 친화적인 국민이 의사소통의 방식으로 채택한 인터넷 글쓰기를 모욕죄라는 구시대적인 도구로 재갈을 물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모욕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문명국가에 대한 모독이다라는 법학자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스트레스를 열린 인터넷에서 배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지 않을까? 물론 모욕의 범위를 벗어나서 구체적인 사실을 지적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까지 허용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이경권(법무법인 대세,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변호사/ 의사)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이즈나, 혼신의 무대
  • 만화 찢고 나온 미모
  • MAMA 여신
  • 지드래곤 스카프 ‘파워’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