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QE·너무 빠른 긴축…연준, 은행 위기 책임 있다"(종합)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 PS 기고 통해 연준 비판
인도중앙은행 총재 출신 최고 중앙은행가 꼽히는 석학
"무분별한 QE, 은행에 쉬운 유동성 의존하게 만들어"
"QE 규모 컸던 만큼 더 긴 시간 들여 금리 인상했어야"
  • 등록 2023-03-29 오전 11:20:59

    수정 2023-03-29 오전 11:20:59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연방준비제도(Fed)의 대규모 양적완화(QE)와 너무 빨랐던 긴축이 은행권 붕괴를 불렀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인 라구람 라잔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는 28일(현지시간)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를 통해 “이번 은행권 붕괴는 문제가 더 시스템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라잔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미국 재무학회장, 인도중앙은행 총재 등을 지냈다. 특히 세계 금융권에서는 그를 역대 가장 뛰어났던 중앙은행가 중 한 명으로 꼽는다.

인도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라구람 라잔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사진=시카고대 제공)


“연준 QE, 쉬운 유동성 의존 높여”

라잔 교수가 지적한 첫 번째는 연준의 무분별한 QE다. 그는 “QE는 중앙은행 지급준비금을 대가로 시장에서 유가증권을 구매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중앙은행 대차대조표를 확대할 뿐만 아니라 시중은행의 대차대조표와 (당국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무보험 예금까지 늘린다”고 진단했다.

QE는 중앙은행이 주로 은행 등이 보유하고 있는 시중의 채권을 직접 매입하는 식으로 유동성을 늘리는 조치다. 이를 중앙은행 관점에서 보면 대차대조표 자산 항목의 국채 등 채권이 늘어나는 만큼 부채 항목의 지급준비금이 함께 증가한다. QE가 대차대조표 확대 정책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 과정에서 중앙은행에 채권을 판 시장 참가자들의 현금 보유는 늘고 예금 예치 수요는 증가하는 만큼 시중은행의 대차대조표 역시 커진다. 이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예금 확대까지 촉진한다는 게 라잔 교수의 설명이다.

라잔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무보험 예금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말 당시 5조5000억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준이 QE를 본격화하면서 이는 지난해 1분기 8조달러 이상으로 불어났다. 라잔 교수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의 경우 2019년 3분기 예금 유입액이 50억달러에 미치지 못했으나, QE 기간 분기 평균은 140억달러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은행들은 (불어난 예금을 통해) 더 수익률이 높은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금융기관이 주택을 담보로 초장기 대출을 해준 주택저당채권을 대상 자산으로 발행한 증권)을 매입했다”며 “사실 이것은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장기 금리는 오랜 기간 동안 많이 오르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문제는 연준이 QE로 인해 높아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긴축을 너무 가파르게 진행했다는 점이다. 연준은 지난해 3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이후 1년 만에 무려 475bp(1bp=0.01%포인트) 인상했다. 연방기금금리(FFR)를 기준금리로 채택한 1990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다. 이로 인해 채권시장에서 단기금리와 장기금리 모두 폭등했다(채권가격 폭락).

라잔 교수는 “연준이 (이번 긴축 시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금리 인상과 양적긴축(QT)에 나섰던 2017~2019년에는 인상이 덜 갑작스러웠고 그 폭도 작았다”며 “이로 인한 은행권 예금 이탈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다만 “이번에는 금리 인상의 속도와 폭이 훨씬 더 컸다”며 “은행들이 보유한 금리 민감 자산 역시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연준 QE 탓에 무보험 예금이 급증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연준에 의해 만들어진 불안정한 무보험 예금은 연준이 정책을 바꿀 때 언제든 빠져나갈 준비가 돼 있었다”고 했다. FDIC에 따르면 미국 은행권이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팔 의도로 매수한 주식·채권) 매각으로 인한 손실만 1조5000억달러를 초과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SVB의 급격한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이 대표적이다. 마이클 바 연준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에 따르면 SVB의 유동성 위기설이 처음 불거진 지난 9일 고객들이 인출한 예금은 420억달러 규모였다. 이는 세간에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10일 아침 SVB는 불안에 떨었던 고객들의 예금 인출 요청액은 1000억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불과 이틀 만에 SVB 총예금 1750억달러(지난해 말 기준)의 81%가 빠져나갈 수 있었던 셈이다.

라잔 교수는 “취약한 은행 시스템은 은행가들이 자초한 것이지만 연준 역시 문제에 일조했다”며 “정기적인 QE는 시중은행들이 점점 더 쉬운 유동성에 의존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더 긴 시간 들여 금리 인상했어야”

라잔 교수는 이와 함께 연준의 감독 기능 역시 지적했다. 그는 “금융 감독 기능은 일부 큰 금융기관들에 엄격하게 적용했지만 모든 은행들에게 그랬던 것은 아니다”며 중소형 은행의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또 다른 리스크로 지적했다. 그는 “팬데믹 기간 동안 절반 이상 비어있던 사무실을 생각해 보라”며 “위험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자본력이 약한 중소형 은행들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업용 부동산 가치 하락→건전성 우려에 따른 중소형 은행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회수→상업용 부동산 가치 추가 하락 등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이어 “금융 감독이 애초 더 강력했다면 오늘날 더 적은 수의 은행이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주목할 점은 이런 와중에 높은 인플레이션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라잔 교수는 “불행하게도 연준의 물가 안정 책무는 금융 안정과 상충한다”며 “(은행권 불안 이후) 시장은 연내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고 일각에서는 QT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더 나아가 “연준은 할인창구(discount window)를 통해 유동성을 더 대량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연준에 따르면 지난 16~22일 미국 은행들은 연준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1639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할인창구 대출은 일주일새 1102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번 위기 이전 통상 100억달러 안팎이었다는 점에서 기록적으로 폭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은행들은 연준이 이번에 급히 도입한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TFP)을 통해서는 537억달러를 수혈했다. 전주(119억달러) 대비 네 배 이상 늘었다.

라잔 교수는 그러면서 “결론은 명확하다”며 “연준이 통화정책, 특히 QE를 통해 오늘날 어려운 금융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은행권 위기에 연준 책임론이 있다는 것이다. 라잔 교수는 “QE 규모가 크고 기간이 길수록 연준은 대차대조표 정상화에 더 긴 시간을 들여 금리를 인상했어야 한다”며 “(은행권 불안 이후 유동성 공급 조치는) 인플레이션과 싸움을 더 연장하고 그 비용을 더 증가시킬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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