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산란계 농장의 밀집사육 환경과 엉터리로 확인된 친환경 인증제도, 허술한 살충제 관리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사태가 또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물복지농장으로 사육환경 개선 필요
살충제 계란 사태의 근본 원인은 농장주들이 닭에 기생하는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사용한 데 있다. 닭은 흙에 몸을 비비는 ‘흙목욕’을 통해 스스로 해충을 털어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산란계 농장은 A4 용지(0.06㎡)보다 좁은 케이지(우리)에서 닭을 사육하고 있어 흙목욕을 시킬 수 없다. 살충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동물단체들은 이같은 공장식 축산 환경과 이를 규제하지 않는 정부가 살충제 계란 사태를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케어 등 11개 동물단체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의 해법은 이미 나와있다”면서 “국내 알 낳는 닭 사육장의 99%를 차지하는 공장식 축산과 감금틀 사육을 폐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육 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는 지난해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때도 있었다. 밀집사육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동물복지농장에서는 닭이 케이지가 아니라 짚이나 톱밥, 흙, 모래 등을 깐 평평한 땅에서 방사돼 사육된다. 그러나 밀집사육을 동물복지농장으로 바꾸려면 축산업자의 수익성이 떨어진다. 정부가 강력한 규제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축산 환경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지만, 단기간 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앞서 농식품부는 지난 4월 축산 환경 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닭 1마리당 사육면적을 0.05㎡에서 0.075㎡로 조금 넓히겠다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기존 농가는 적용을 10년간 유예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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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조사 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은 49개 농장 가운데 친환경 농장이 31개로 일반 농장보다 오히려 더 많았다. 이들을 포함해 친환경 인증 기준에 미치지 못한 농가는 총 68곳이었다. 이는 전체 친환경 농가 683곳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친환경 인증과 관리가 부실하게 이뤄진 이유로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 ‘농피아’가 친환경 인증 업무를 하는 민간 업체에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의 전문성을 활용할 필요는 있지만, 유착관계로 인해 관리가 허술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된다.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문제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기회에 다시 점검하겠다”며 “친환경 인증기관의 책임과 인증기관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친환경 축산 기준도 근본부터 다시 점검해서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행 법규상 친환경 농가에서 살충제가 검출돼도 인증을 취소할 수 없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시정명령을 받는 데 그치고 친환경 마크를 떼면 계란을 유통할 수 있다.
살충제 판매기록 의무화 시급
닭에 사용이 금지된 약품이 별다른 제약 없이 광범위하게 사용돼 온 실태가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됐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닭 진드기 제거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살충제는 비펜트린을 포함한 13품목이다. 그러나 전수조사 결과 피프로닐, 에톡사졸, 플루페녹수론, 피리다벤 등 금지된 약물이 검출됐다. 비펜트린 역시 부적합 판정을 받은 49개 농장 중 37개 농장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살충제 판매 기록 의무화가 시급하다는 요구가 높다. 호르몬제나 항생제 등 동물용 의약품은 동물약국이나 동물병원 등이 판매 시 반드시 기록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살충제 같은 동물용 의약외품은 별도 규정이 없다. 누가 누구에게 팔았고 어디에 사용됐는지 추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살충제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살충제, 농약 등에 대해서 누구에게 무슨 목적으로 판매했는지 농약상이 기록·관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판매 기록을 남기더라도 농가가 살충제 사용 매뉴얼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인체에 유해한 살충제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친환경 진드기 약제를 개발·보급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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