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대로 가다가는 올 상반기 들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대외 순채무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한다.
정부가 걱정할 만도 하다.
외채증가로 인해 대외 지급능력이 빠른 속도로 악화돼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 같은 경우는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중 하나로 꼽았을 정도다. (관련기사: S&P "한국 단기외채 급증..계속되면 등급↓" )
정부가 단기외채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작년 상반기부터다. 은행들에 대해 외채조달을 자제하라고 요청하는 한편으로 외국계은행 국내지점에 대한 세금규제를 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추정컨데 정부는 단기외채가 많이 들어오는 탓에 경상수지 악화에 따른 환율조정(상승)이 막히고 있다고 보는 듯도하다. 해외로부터의 자금유입이 국내 통화량을 팽창시키는 부작용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단기외채의 증가현상 역시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
장기계약을 특성으로 하는 조선·중공업체를 중심으로 해외수주가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고, 작년이후 해외펀드 붐이 일어났던 영향도 크다. 단기외채 급증은 우리 경제 호황의 부산물이었던 한 셈이다. (관련기사: 수출 사상최고인데 외채가 급증? 역설의 경제 해외펀드에 투자하는데 외채가 왜 늘어나나 )
그래서 이미 지난해에 정부가 단기외채를 막아 보려고 규제를 가했지만 허사였다. 수요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내놓은 공급 차단 조치는 외화자금의 가격만 올려놓았다. 우리국민의 주머니가 털리고 그 돈은 고스란히 해외로 빠져나갔을 뿐이었다. (관련기사: 파란만장 시장개입 실패史 )
지난해 몇 차례의 파동과 지난 19일의 경우에서 봤듯이 단기외채 이슈에 대한 섣부른 정책대응은 시장 금리를 폭등시켜 경제전반에 큰 부담을 주기도 한다. 한국은행에게 '금리를 내려라'고 닥달하면서, 정부 자신은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쓰는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다.
결국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 대안 중 하나로 정부가 보유중인 600억달러에 달하는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하는 건 어떨까 싶다. 외평기금이 스왑시장에서 외화자금을 공급하면, 외자 가격이 떨어질테고, 그러면 단기외채 도입의 유인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정부는 단기외채 억제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금리차익을 통해 고질적인 외평기금 적자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단기외채를 들여온 외국인이 막대한 차익을 가져가는 것과 같은 식이다. 어차피 누군가 먹을 차익이라면 외국인보다는 우리국민이 차지하는게 좋지 않겠는가.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 외환보유액이 민간은행 예치금으로 묶이는 바람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전례가 있었고, 지금의 우리 외환보유액 규모가 그리 넉넉하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공적기금이 민간에 보조금을 주는 것 아니냐', '외평기금이 스왑시장에서 돈 놀이를 해서 되겠느냐'는 비판 역시 있을 법하다.
하지만 민간이 매달 수십억달러씩 단기빚을 들여오고, 정부는 역마진을 감수해가며 이를 거둬들이는 부조리도 만만한 무게가 아니다.
게다가 이런데 돈을 쓰는 것이 외평기금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은 외평기금의 설치 목적을 "외국환 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국내외 금융기관에의 예치·예탁 또는 대여"하는 방법으로도 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지난해 봄까지만해도 -0.20%포인트 안팎에 불과하던 스왑베이시스(1년물 기준)가 정부의 단기외채 규제와 서브프라임 사태를 거치면서 지금은 -2%포인트 수준으로까지 10배나 확대돼 있다. "전쟁 난 나라냐?"는 비아냥이 나올 지경이다. 거래가 "원활"하다고 보기 어려운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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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단기외채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
선물환을 대거 매도했던 중공업체들이 최근 환율급등으로 상당한 손실을 봤고, 해외펀드의 열기도 크게 식은 데다, '환율이 하락할 것'이라는 종전의 일방적인 기대심리가 크게 완화돼 단기외채를 불러오는 '환헤지' 유인이 이래 저래 많이 줄었을 법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