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까지 규제 땐 '최악' 베트남도 '불안'…설 곳 없는 韓기업

美·유럽 對 중·러 구도…양극체제 형성 가능성
'전략적 모호성' 시대 끝나…기업들 투자계획 혼란
미 중심 IPEF 출범…공급망 전략도 다시 짜야
  • 등록 2022-03-06 오후 7:01:29

    수정 2022-03-06 오후 8:45:35

[이데일리 김상윤 최영지 송승현 박순엽 기자] 4대 그룹의 한 경제연구소는 최근 러시아 전쟁 이후 글로벌 공급망(GVC) 재편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미국·중국 간 갈등을 넘어 이제 러시아까지 포함한 ‘신(新)냉전’ 구도에 따른 공급망 재편 문제 등을 담아야 한다. 심지어 이번 유엔(UN)의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도 보고서에 포함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중국, 인도, 베트남 등 35개국은 기권했고 당사국인 러시아, 벨라루스, 북한, 에리트레아, 시리아는 반대표를 행사했다. 익명을 요구한 연구원 A씨는 “미·중 갈등이 불거지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상당수 베트남 등 아세안으로 넘어갔지만, 다시 전략을 짜야 할지도 모른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로 다음 국제질서에 대한 예측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한국무역협회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관련 수출입업계 간담회에서 관계자들이 회의자료를 살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략적 모호성’ 시대 끝나…中 ‘꿈의 시장’ 아닌 지 오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신냉전 구도가 ‘미 주도의 서방 대(對) 중·러’로 뚜렷해지면서 우리 기업들의 설 곳이 더욱 좁아지고 있다. 자유주의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시대가 끝나고, 미국과 유럽이 밀접하게 연결되는 동시에 다른 한쪽은 중국과 러시아가 결합한 새로운 미·중 양극체제가 형성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 20년간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우리 기업에 대한 피해도 최소화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면 ‘국제적 왕따’가 될 처지다. 한국의 외교·안보 입장 변화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활동 무대도 뒤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공급망뿐만 아니라 투자도 이제는 자유주의 권역과 중국·러시아 권역으로 나눠 관리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며 “우리나라는 미·중 사이에서 세심한 전략을 짜야 한다”고 했다.

중국은 이미 ‘꿈의 시장’이 아닌 지 오래다. ‘공동부유’를 앞세운 시진핑 정부의 막무가내식 규제에 기업 환경이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안갯속에 빠졌기 때문이다. 반도체·전기차 등 주력 산업에서 핵심 부품의 70% 이상을 자급자족하겠다고 선언한 중국 정부의 자국 우선주의에 우리 기업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여기에 미국은 동맹국에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을 반입을 금지해달라고 요구까지 한 상황이다.

우리 기업들의 탈(脫) 중국 행보가 잇따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5월 현대차 베이징 1공장 매각을 추진하며 사업 재편에 나섰다. SK그룹 중국 지주사인 SK차이나는 지난해 8월 SK렌터카 지분 100%를 중국 토요타에 500억원에 매각하며 탈중국을 선언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D램 반도체 공장에 초미세공정 핵심인 극자외선 (EUV) 노광기를 배치하려고 했지만, 잠정 보류했다. 4대그룹의 B씨는 “내수시장이 크고 인건비도 싸기 때문에 중국 투자는 늘 1순위로 고려됐지만,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며 “미·중 갈등에 따른 최악의 리스크 비용까지 고려해서도 수지타산이 나오면 중국 투자에 나설 수 있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심지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리스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지난달 19일 “우크라이나가 위기에 처하면 그 충격은 전 세계로 퍼져 메아리로 들릴 것”이라며 “대만과 동아시아에서 그 메아리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CNN 타운홀 행사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때 미국이 방어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그렇게 할 책무가 있다”고 답했다. 가능성은 작지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에 ‘차이나 리스크’는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수출 1위 시장인 중국을 마냥 포기할 순 없다. 여전히 낮은 인건비에 막강한 내수 시장을 보유한 매력 탓이다. 10대 그룹 경제연구소 관계자 C씨는 “안보문제에 따라 경제문제가 달라지니 전략을 짜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며 “첨단산업은 국내 또는 미국,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산업은 중국, 아세안 시장으로 진출하는 등 더 세부적으로 시장 및 공급망을 조절하는 방안을 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뉴시스·AP)
미국 중심의 IPEF 출범…다자 무역체제 변화 주목

재계는 다자무역체제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1일 세계 GDP(30.8%), 인구(29.7%), 무역(31.9%)의 약 30%를 차지하는 최대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발효됐다. 하지만, 열흘 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판 인도태평양 전략서를 발표하고 올해 상반기 중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을 예고했다. IPEF는 중국 주도의 RCEP을 견제하고자 미국이 내민 ‘비장의 카드’다. 다자주의에 기반한 자유무역에서 안보 논리가 지배하는 폐쇄적인 공급망 짜기로 ‘통상 판’이 바뀌는 셈이다. 한국이 어떤 판에 끼느냐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신남방협력연구센터장은 “자유무역 혜택의 축소와 역내 무역 왜곡, 아세안 중심성의 훼손과 불이익, 국내 산업경쟁력 저하 등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며 “공급망 협력을 총괄할 수 있는 청와대 직속 통합 조정기구의 설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 IPEF 구상의 주요 내용 (자료=세종연구소)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초췌한 얼굴 尹, 구치소행
  • 尹대통령 체포
  • 3중막 뚫었다
  • 김혜수, 방부제 美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