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FX칼럼)‘혼네’와 ‘다테마에’의 차이

  • 등록 2003-01-03 오후 3:43:47

    수정 2003-01-03 오후 3:43:47

[edaily] 일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혼네(ほんね : 本音)와 다테마에(たてまえ: 立前)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혼네’가 본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면 ‘다테마에’는 표면상의 방침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난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을 하지않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알아서 신경을 써주는 일본인 특유의 ‘기쿠바리(氣配り)’에서 유래한 것이기는 하지만, “겉 다르고 속 다른 일본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이에서 출발했다고도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시장과 그 주변 얘기를 풀어 가볼까 합니다. ◆ 여기 저기서 관찰되는 ‘혼네’와 ‘다테마에’ 지난 12월초, 122엔대에서 한참 방향성을 모색 중이던 달러/엔 환율이 125엔대를 향해 급하게 올라섰던 계기는 시오카와 마사주로 일본 재무상의 “구매력평가에 따른 적정환율로 보나 일본의 경제상황으로 보나 150~160엔 정도가 적절한 달러/엔 환율”이라는 발언 때문이었다. 일국의 재무장관이나 되는 사람이 환율의 특정 레벨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노골적으로 시장에 달러 매수세를 부추긴 점은 이례적이었고 그 만큼 시장 안팎에서 비난의 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발언의 효력은 일주일도 못 갔고, 150엔을 운운했던 달러/엔 환율은 125엔대의 안착도 힘겨워 하더니 12월 내내 하락세로 반전, 연말을 하루 앞두고는 118엔 초반대까지 미끄러지는 우스운 꼴을 보였다. 시오카와 재무상의 ‘다테마에’는 150엔까지 엔화가 절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막상 그의 ‘혼네’는 달러/엔의 급등을 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시장이 현혹이라도 되어서 더 이상 빠지지만 말아도 다행이라는 것이었다.(시오카와 재무상의 속마음을 어찌 확인하겠는가? 시장의 흐름이 이러한 생각을 갖게끔 한다). 2002년에서 2003년으로 해가 바뀌는 시기에 또 하나의 ‘악의 축’인 북한이 핵 문제로 한반도에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뉴욕의 주가와 달러화 시세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으로서야 수 틀리면 늘상 해오던 `깽판치기` 작전에 돌입해 밑져봐야 본전인 게임에 진입했고, 이라크와의 전쟁준비 만으로도 정신 사나운 미국은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2개 지역에서 동시적으로 전쟁수행 가능”이라는 위협적인 발언에 부시 대통령의 “북한 핵 문제는 외교적 채널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유화적인 발언도 곁들이고 있어 북한 문제를 다소 성가시고 골치 아픈 일로 인식하고 있는 미 행정부의 ‘혼네’가 읽혀진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임을 잘 아는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참여자들은 이러한 예상외의 변수로 시장이 출렁거릴 때 최대한 수익을 내고자 신발끈을 조이기 마련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지난 연말 납회일을 맞아 급락 마감하던 주식시장에서 헐 값의 주식을 사 모으거나 지수옵션 콜(Call)에 베팅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북한 핵 문제로 같이 걱정하는 척 하며 최대한 지수를 떨어뜨려(다테마에) 결국 별 탈 없이 마무리 될 향후 시나리오에 따라 급반등 할 장세에서 한 몫 챙기자(혼네).”는 전략이 멋지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필자 또한 `쓰는 일`로 업을 삼다 보니 여러 기관에서 발간한 새해 경제전망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번에도 확인된 사실은 원조(元祖)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가 힘들 뿐 하나만 읽으면 나머지 전망들은 “이하동문”으로 뭉뚱거려도 큰 탈이 없다는 점이었다. 지정학적 위험(geopolitical risk)으로 미국 경제 및 주식시장의 회복세가 금년 상반기까지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일 것이고 하반기 들어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일 것이며(왜 그럴 것인지에 대한 이유는 다들 불분명하다), 달러 또한 기존의 글로벌 달러약세가 좀 더 이어지다가 미국 경기의 회복시점에 상승반전하지 않겠는가 하는 데에는 어느 기관의 전망이든지 거의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은행이 금년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30억 달러 내외로 대폭 줄어들겠다고 예상하자 대다수 민간 경제연구소들도 경상수지의 흑자가 줄어들 것으로 보았으며, 조금 튀어 보겠다는 곳에서는 적자반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도까지 언급하는 모습이었다. 열심히 분석하고 연구해 내놓은 ‘다테마에’ 뒤에는 “어차피 아무도 모를 미래에 대한 예측인데 남들 얘기하는 정도만 얘기해서 혼자 바보 되지는 말자.”는 ‘혼네’가 숨어있다고 하겠다. ◆ 외환시장 참여자들의 ‘혼네’와 ‘다테마에’ “달러의 세계 주요통화대비 약세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환율이 반등할 때 마다 고점매도에 나서야 한다. 주식시장을 보라. 새해 들어 폭등세를 보이는 데에다가 외국인들도 어마어마하게 사들이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포지션이 `숏(달러과다매도)` 인 딜러나 개인투자자, 일년 내내 달러를 사기만 하는 업체의 외환담당자, 2003년에도 달러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일찌감치 전망을 낸 애널리스트 등등. “주가지수가 100포인트 가량 빠지는 동안에도 환율은 줄창 빠졌다. 북한 핵 문제가 어디 애들 장난인줄 아느냐? 이라크전 막상 터지면 서울에서도 환율 빠진다는 보장 없다. 엔화대출 마구 끌어다 쓴 기업들 조만간 엔/원 환율 급등하면 손절매수 나오고 그래서 우리 환율은 달러/엔 보다 더 빨리 오를 수 있다.”… 숏포지션을 닫고 “롱(달러과다매수)”으로 돌아선 딜러나 개인투자자, 환율 급등하면 가만히 앉아 환차익 누릴 수출업체, 남들이 달러약세를 예상할 때 달러강세로 용감하게 전망한 애널리스트 등등. “달러/엔 좀 빠진다고 이 연말에 뭐 이렇게까지 환율이 밀리냐? 우리 환율이 달러/엔 변수 말고는 고려할 게 하나도 없나?”… 일찌감치 거래를 마감하고 연말 휴가에 들어간 딜러들이나 개인투자자. 자신이 시장을 떠나있는 사이에 환율이 출렁거린 것이 아쉬워서(마치 거래를 하고 있었더라면 거액을 벌 수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해보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 누구보다도 달러/엔 등락에 민감하게 포지션을 잡던 사람은 아니었는지 살펴 볼 일이다. 다소 심하게 표현한 감은 있지만, 결국 위에서 정리한 내용은 ‘자신의 현 포지션 상황에 따라 뷰는 극명히 갈리며, 시장의 움직임은 자신이 수익을 내는 쪽으로 가 주는 것이 최고다’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 새해가 시작되면서 달러/원 환율은 다시 1200원대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인가, 이번의 환율 반등세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이며 어디에서 ‘달러매도’로 승부를 걸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겉으로야 이라크전의 개전이 임박했다는 사실이나 북한 문제 등으로 환율이 잘 빠지기 어렵다거나 미국 증시가 금년에도 ‘January effect(1월 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달러화도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등의 전망을 밝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대다수 달러/원 시장참여자들의 ‘혼네’는 이번 기회를 활용해 (달러를) 잘 팔아보자는 쪽이다. 달러/엔 환율이 121.50을 넘어서거나 달러/원 환율이 1220원을 넘어서는 상황이 오면 그 때 가서는 ‘다테마에’와 ‘혼네’가 일치할 수가 있어 새로운 장세 전망이 필요함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글로벌 달러약세의 배경과 2003년 환율 전망에 대한 내용은 www.nfutures.co.kr `2003년 시장전망`을 참고) (농협선물 리서치팀 이진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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