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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찾은 충남 청양군 정산면에 있는 정진원(28)씨네 축사는 꿀벌과 소(牛)가 공존한다. 상극으로 보이는 둘을 잇는 매개는 커피박이다. 마구에 커피박을 깔아둔 정씨네 축사는 커피향이 그윽하다. 여기 소들은 2016년 12월부터 커피박을 이불 삼아 덮고 잤다. 소의 잠자리를 바뀌자 나비효과가 뒤따랐다.
악취 밀어내니 파리까지 사라져
우선 커피향이 축사 악취를 밀어냈다. 원래 쓰던 톱밥으론 어림없는 일이다. 커피박은 자체 향으로 악취를 희석했다. 부패를 촉진하는 영향도 크다. 커피박은 수분 함량이 많아 금방 썩는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서 머금은 물기가 남아 있어서다. 빨리 썩는 만큼 비례해서 악취가 나는 시간도 짧아진다. 냄새 강도를 낮추고 잔존기간까지 줄이는 것이다.
실제로 정씨네 축사에서는 파리를 찾기 어렵다. 옆집 축사는 파리 떼가 끓는 것과 비교된다. 커피박은 빨리 썩어서 열이 발생한다. 열 때문에 파리가 소똥에 알을 낳지 못한다고 한다. 이로써 소가 파리를 쫓느라 받을 스트레스도 줄었다. 축사에서는 커피 마시는(커피박을 핥는) 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톱밥은 거들떠도 안 봤던 얘들이다. “하물며 소도 지 똥 냄새가 고약할 텐데, 전보다 줄어서 좋지 않겄어유?”
냄새와 해충을 잡으니 주변 농가와 관계도 원만하다. 축사는 기피 시설로 꼽히는데, 트집 잡을 게 없다. 외려 정씨네 축사를 치켜세운다. 커피박 퇴비는 주변 농가에 무료로 준다. 이걸로 농사를 지으면 작황이 좋다고 마을 주민은 입을 모은다. 커피박이 커피콩에서 비롯한 유기물이니 화학 비료보다 낫다. 자연히 농가 소득이 올랐다. 지역에서 커피 퇴비로 농사를 짓는 권천수(66)씨는 “벼가 더 굵고 크게 자라서 알이 실하니까 정미소에서 우리 집 쌀을 독점으로 받아가려고 안달”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장마가 길어서 작황이 걱정됐는데, 커피박 퇴비를 쓴 농작물은 끄떡 없었다”며 “풍수해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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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박 나비효과는 정씨의 아이디어에서 비롯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다니던 정씨가 커피박에 관심을 둔 때는 2016년 여름이다. 학업을 마치고 가업을 이으려던 차에 커피박을 활용하는 해외 축산업 사례를 접하고 들떴다. 자취방 근처 커피집을 찾아갔다. 주인이 반기면서 말했다. “다 가져가세요.” 커피박이 폐기물이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발생한 커피박은 14만9000t(추정)이다.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고 쳤을 때, 봉투 값만 41억 원이 든다. 운반과 매립 비용, 환경 오염에 따른 무형의 비용은 더 크다. 매해 점증하고 있어 골치다. 커피박은 5년 새 26% 늘어났다. 이런 쓰레기가 농가에는 소득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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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커피박 절대량이 부족해 아직은 경제성이 떨어진다. 정씨는 한 달에 많게는 커피박 45t을 서울에서 가져온다. 톱밥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부족한 물량이다. 운반 비용도 개인이 감당하기엔 부담이다. 커피박에 달려오는 쓰레기를 분류하는 데에도 손이 많이 간다. 커피박이 쓰레기 취급을 받다 보니, 다른 쓰레기와 함께 배출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담배꽁초는 예사고 요즘에는 마스크까지 따라온다.
조태상 칠갑산알밤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커피박 재활용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려면 지자체 노력으로 한계가 있다”며 “환경부 차원에서 검토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조합은 전국 커피박을 모두 소화할 여력이 되지만, 수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비용 지원이 뒤따르면 커피박 재활용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