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PEF)②신뢰의 위기

준비 소홀..반쪽 출발로 위기 자초
해외 펀드와 역차별..규제완화해야 활성화 가능
  • 등록 2006-06-21 오후 2:39:04

    수정 2006-06-21 오후 2:39:04

[이데일리 조진형기자] 국내 사모투자전문회사(PEF)가 도입되기 1년전인 2003년 12월. 금융감독원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펀드가 등록됐다. 이른바 `이헌재 펀드`로 불렸던 한나무 사모M&A펀드다.  

첫 토종펀드로 주목받았던 이 펀드는 3개월여 후 투자실적은 물론 자금조성도 없이 해체됐다. 2004년초 이헌재 전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입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 부총리의 입각으로 PEF 설립에 대한 논의는 더 뜨거워진다. 이 전 부총리는 펀드를 포기하는 대신 PEF를 제도화하는데 힘을 썼다.

경제부총리가 팔을 걷어붙이고 추진된 PEF는 탄력이 붙었다. 이 전 부총리의 입각과 거의 동시에  육성을 골자로 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간투법)이 개정됐고 2004년 12월 공식 첫 PEF가 설립됐다.

◇ 반쪽 출발의 허점

이 전 부총리는 펀드 설립으로 PEF에 불씨를 당기고, 법제화까지 마무리했다.

외환위기 구조조정을 이끈 이 전 장관의 '토종자본 육성론'은 PEF 도입에 힘을 실어줬다. 해외투기 자본의 대항마로 국내 토종펀드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PEF 제도화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거의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식으로 진행됐다.

빠른 속도만큼 PEF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시장은 우리나라에서도 론스타나 뉴브릿지 같은 펀드가 나올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무엇보다 토종 PEF는 외환위기이후 헐값매각으로 조단위로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국부유출 경로를 안으로 되돌려놓을 대안으로 제시됐다.  

올해초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경영권 공격에서 극명하게 나타났지만 외국계자본의 토종기업 경영권 위협도 막아줄 것이란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이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도입된 지 1년 반. 토종PEF의 규모는 초창기 기대에 비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성과는 없다.

이러다보니 시장은 PEF를 외면하고 있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토종PEF도 엄연한 투자수단인데 시장에서는 그 매력을 인정은 커녕 인식되지도 않고 있다"면서 "법을 만든다고 해서 시장이 만들어지는게 아니라는 법칙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토종펀드 육성이란 의도는 나쁘지 않지만 국내 PEF는 불완전하게, 너무 급작스럽게 출발했다"면서 "진정한 투자수단이라는 인식이 시장에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 이헌재 사단이 활성화 주도  

이 전 부총리가 도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불신을 받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PEF시장 활성화에 앞장 선 것도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는 금융계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헌재 사단의 '우등생'으로 알려졌던 김영재 전 금감위 대변인은 PEF 전도사로 나섰다. 그는 지난 2004년 10월 칸사스자산운용을 출범시킨 이후 잇따라 PEF를 설립했다. '제2의 이헌재 펀드'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칸서스1호는 계획했던 투자에 차질이 생겨 해산됐고, 현재 칸서스3호가 1505억원 규모로 운용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가세했다. 그는 토종펀드를 주창한 보고펀드를 설립하고 5110억원 규모의 PEF를 설립했다.

우리금융지주의 황영기 회장도 PEF를 설립하고, 투자하는 등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3000억원 규모로 KDB1호 PEF를 운용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PEF는 이 전 부총리와 그 측근들에 의해 탄생,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 한 PEF업계 관계자는 "PEF는 설립할 때는 물론 성장과정에서도 시장을 뒤로한 채 이뤄진 측면이 크다"면서 "자연스럽게 PEF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GP와 LP간의 신뢰도 문제

PEF의 운용주체인 GP(무한책임사원)와 투자주체인 LP(유한책임사원)간의 신뢰도 바닥이다.

무엇보다 PEF운용 경험도 없고, 운용성과(레코드)도 없다. 자연스럽게 LP들도 PEF에 돈을 주기 미심쩍어하는 것이다. 한 생명보험사 투자담당자는 "토종PEF에 믿을만한 인력이나 과거 성과도 없다"면서 "투자제안서는 검토하고 있지만 여지껏 투자를 집행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PEF업계 관계자는 "LP들 대부분이 대형 금융기관이나 연기금으로 국한된 상황에서 투자받기가 쉽지 않다"면서 "애써 투자를 받더라도 보수적인 LP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아무래도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사실 리스크가 있는 투자를 하기에는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PEF 운용자들 대부분이 국내 시중은행 출신들로 금융전문가이긴 하지만 기업전문가가 아니다"라면서 "PEF 전문인력도 없고 네트워크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PEF는 인수합병(M&A)도 중요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가치를 높이는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

◇ 손발을 묶고 활성화를 기대하다니..

업계에서는 PEF 규제가 지나치게 많아 활성화를 방해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토종PEF는 투자규제를 전혀 받지 않는 론스타, 뉴브리지 등 외국계 거대자본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토종PEF는 부실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수익을 거두는 바이아웃펀드로 국한된다. 이 마저도 투자대상과 투자기간, 지분취득 요건 등 여러가지 규제를 받는다. PEF법이 규제법인 간투법에 포함된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기업 M&A시장은 얼어붙었다.

한 관계자는 "IMF 직후와는 달리 시장에 매력적인 매물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우량 대기업은 매각가가 수조원에 쳐다보지도 못하고, 괜찮은 중소기업이 있다고 해도 경쟁자가 많아 가격메리트가 없다"고 설명했다.

여러자산에 다양한 투자가 가능하다면 M&A 시장 불황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금감원 관계자는 "외국에서 PEF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국내에서는 규제를 정하고 만들었다"면서 "도입 때부터 규제는 점차 완화하고 있지만 PEF 투자자와 운용자 모두 초보자여서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PEF는 이렇게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손발을 묶은 상태에서 '한국형 론스타'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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