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부총리는 28일 "(미국과)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위한) 8단계 위험등급 평가는 대략 9월 정도에 끝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협의가 순조롭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실상 9월까지 수입 위생조건을 개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개정과 관련한 현재까지의 정부 입장을 뒤집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수입위생조건은 협상을 실제 해봐야 하기 때문에 협상 종료 일정을 못박을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지난 4월 초 협상이 타결된 직후 수입 위생 조건 개정과 관련해 "합리적 절차와 기간을 거쳐 처리하겠다"고만 약속했다. 정부가 이 사안에 그토록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던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가 아무리 급해도 국민건강 (광우병)과 직결된 문제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FTA 협상 당시부터 현행 수입 위생조건을 개정, "뼈 없는 쇠고기 뿐 아니라 LA 갈비(립)와 같은 뼈 있는 쇠고기까지 수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수입위생 조건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는 30개월 미만 뼈를 발라낸 쇠고기만 수입할 수 있다.
권 부총리가 그동안의 강경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것은 참여 정부 최대 업적 중 하나로 치켜세우고 있는 한미 FTA 발효가 미국의 재협상 요구와 미국 의회의 비준 동의 문제로 자칫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도 협정문 전문이 공개되면서 "예상했던 것 만큼 실익을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권 부총리는 미국 내 축산업계의 눈치를 보고 있는 미 의회를 향해 `달라는 대로 줄테니 다된 밥에 재뿌리는 일은 제발 삼가달라`고 말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정부의 갑작스런 입장 변화에 대해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고개를 들만도 하다.
정부는 가축질병 예방·치료 국제기구인 국제수역사무국(OIE)가 규정하고 있는 `국내 권리를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사실상 포기했다.
정부의 입장 변화는 FTA와 전혀 관련이 없는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문제를 개정하기 위해 미국 내 축산업계와 의회를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는 미 정부의 움직임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뒷맛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