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규모가 일정 금액 이상인 딜은 어김없이 외국계 IB들의 몫이다. 소규모 딜이나 워크아웃 기업의 매각 역시 회계법인들이 장악, 국내 IB들에 돌아갈 몫은 별로 없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해 내내 국내 M&A시장을 달궜던 대우조선해양 매각 딜 당시 직접 표출되기도 했다.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매각 자문사로 골드만삭스를 선정했었다.
국내 IB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거셌다. "국내 기업이 국내 자금으로 국내 조선회사를 사고 파는데 굳이 해외IB들을 써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불만 섞인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능력을 입증할만한 거래 실적(track record)이 없는 점은 국내 IB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국내 IB들이 거래 경험이 많은 외국계 IB 인력들을 영입하는데 주력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글로벌 IB 인재 영입 박차
운(?) 좋게도 지난해 글로벌 IB들의 위기 상황은 확실히 국내 투자은행들에게 기회가 됐다. 글로벌 IB들의 위상이 흔들리자 능력있는 IB 인력들을 비교적 용이하게 영입할 수 있었다.
M&A 자문과 커버리지 분야 인력은 국내 IB들의 1순위 영입 대상이 됐다. 삼성증권이 모간스탠리 서울지점 IB부문 공동대표를 지냈던 박성우 전무를, KB투자증권이 리먼브러더스 출신의 이민섭 전무를 영입했다.
우리투자증권은 골드만삭스 출신의 박종욱 상무를 어드바이저리 그룹장으로 뽑았고, KTB투자증권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UBS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김진호 전무를 영입했다.
하나대투증권은 도이치뱅크 출신의 커버리지 전문가 박상호 전무를, 전통의 국내 IB 강자 대우증권은 아예 대표이사로 국내 IB 1세대인 임기영 사장을 모셔왔다.
국내 IB들은 이렇게 영입된 IB 인력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선진화하고 있다. 기존 국내 IB들에게는 생소했던 커버리지 부문을 신설 강화함으로써 딜 소싱(거래 발굴) 능력 배양에 집중하고 있다.
KB금융그룹 계열의 KB투자증권은 글로벌 IB 인재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IB하우스 중 하나다. IB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민섭 전무는 "적어도 국내 딜에 관한 한 앞으로 국내 IB하우스의 힘이 커질 것"이라며 "능력있는 글로벌 IB 인재들에게 문호가 항상 열려있다"고 전했다.
◇ "이젠 국내시장이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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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홍콩에 IB거점을 열었다. 현재 1억달러 증자를 마쳤고, M&A 등 주요 IB부문의 현지 책임자급 인력 영입을 곧 마무리해 올 하반기부터 본격 업무를 개시할 예정이다.
유럽 M&A시장 강자인 로스차일드와 크로스보더 M&A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지난해 11월 체결했으며, 올 3월에는 한국의 MSCI 선진시장 편입에 대비해 동경 사무소를 오픈했다.
우리투자증권은 아시아 IB시장 공략의 전초 기지를 싱가포르에 구축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시장에서의 선도 투자은행 입지 확보를 위한 중국 리서치센터도 설립했다.
싱가포르에 설립한 동남아 IB센터 설립에 이어 베트남, 말레이시아 사무소를 설립했고 지난해 10월에는 한국계 인도네시아 기업인 코린도 그룹 계열 증권사인 PT CSI(PT Clemont Securities Indonesia) 지분 60%를 인수해 본격적인 IB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전통의 국내 IB 강자인 대우증권도 국내를 대표하는 IB하우스를 넘어 아시아를 선도하는 IB하우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임기영 사장은 최근 취임사에서 `대우증권의 무대는 한국이 아닌 글로벌 마켓`임을 강조했다.
KTB는 중국 외에도 지난해 태국 FES증권을 인수해 태국 IB시장에 진출했고, 최근에는 싱가포르 사무소를 통해 이슬람 자금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 금융그룹 중심 IB하우스 강세 전망
IB 전문가들은 국내 IB업계가 금융그룹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들어 M&A의 성패가 인수금융 성공 여하에 따라 갈리기 시작하면서, 은행 계열사를 보유한 금융그룹 계열 IB하우스에 강점이 크다는 분석이다.
하나금융그룹 계열의 하나대투증권은 같은 계열인 하나은행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는 IB하우스다. 지난해 두산의 테크팩 사업 매각 자문과 인수금융 자문을 싹쓸이하기도 했다.
우리금융그룹 계열인 우리투자증권은 이미 국내 IB시장의 리딩 하우스로 인정받고 있다. 일찍부터 IB 부문 강화에 주력한 결과가 현재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빠른 성과는 우리금융그룹이란 든든한 배경과 함께 정영채 IB사업부 대표 등 유능한 IB 인력들의 능력이 맺은 결실로 시장은 보고 있다.
금융그룹 계열은 아니지만 삼성증권은 삼성이란 브랜드에 걸맞게 인지도 면에서 한발 앞서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올 6월에는 외환은행과 M&A 자문과 인수금융에 관한 상호 제휴를 맺어 비금융 계열 IB하우스로서의 약점을 보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