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수의 월가 키워드)The Lord of the Media①

  • 등록 2004-02-19 오후 2:12:02

    수정 2004-02-19 오후 2:12:02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자동차 세일즈맨 마이클은 출근 전에 꼭 CNBC를 보고, 주식시장 이슈를 점검한다. 맨해튼까지 가는 통근 기차 안에서는 뉴욕타임즈를 읽는다. 고객 휴게실 TV에서는 ESPN이 양키즈 경기를 온 종일 방송한다. 은퇴한 마이클의 아버지는 골프광이다. 지난주 라운딩을 하다 발목을 접질려 지금은 골프채널을 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어머니 로라는 요리를 할 때마다 냉장고에 붙어있는 작은 LCD TV를 틀어놓는다. 채널은 60년대 흘러간 영화에 고정돼 있다. 마이클의 아들 톰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디즈니 TV에 몰두한다. `롤리, 폴리, 올리`를 보고 나면 G4 채널을 틀어, 새로 나온 엑스박스 게임 해설 프로그램을 본다. 동화작가를 꿈꾸는 아내 루시는 인터넷 상에 습작을 올리는 것이 취미다. 얼마전 루시에게 좋은 일이 있었다. 루시의 글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한 아동잡지사 사장이 출판을 제안한 것이다. 루시와 마이클은 원고료를 받으면 올란도의 디즈니 월드로 온 가족이 휴가를 떠날 계획을 세웠다. 미국인들의 일상은 이처럼 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 전화, 핸드폰 등 온갖 미디어로 채워져 있다.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기업이 운영한다면 어떻게 될까. `케이블 자이언트` 컴캐스트가 이같은 꿈을 꾸고 있다. 컴캐스트는 지난주 월트디즈니를 인수하겠다고 선언, 월가를 흥분시켰다. 디즈니는 `미디어 제왕`을 꿈꾸는 한 40대 사업가의 거대한 비전의 일부분일 뿐이다. ◇컴캐스트와 브라이언 로버츠 컴캐스트는 앞서 예로든 거의 모든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필라델피아를 근거지로 하는 컴캐스트는 미국 최대의 케이블 컴퍼니다. 필라델피아를 홈으로 하는 프로 아이스하키 팀, 프로 농구팀의 모기업이면서, `컴캐스트 센터`라는 종합체육관의 주인이기도 하다. 케이블 망으로 VOD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는 기간망 사업자이면서 골프채널과 게임채널도 보유하고 있는 미디어 기업이다. 이런 컴캐스트가 ABC, ESPN의 모기업인 디즈니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컴캐스트는 1963년 설립됐다. 랄프 로버츠와 두 명의 동업자들은 미시시피 투필로에서 1200명의 가입자를 가진 작은 케이블 회사를 인수했다. 이후 합병을 거듭, 지금은 5만9000명의 직원과 18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립자 랄프 로버츠는 올해 84살로 해군장교 출신이면서 와튼스쿨을 나왔다. 그는 1990년 아들 브라이언에게 CEO 자리를 물려준 후 지금은 명예회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랄프는 5명의 자식을 뒀는데 그중 브라이언이 사업에 재주가 있었다. 브라이언은 아버지의 모교 와튼스쿨을 졸업한 후 컴캐스트에 들어와서 케이블 탑을 기어오르고, 집집마다 케이블을 설치해주는 등 바닥부터 일을 배워나갔다. 브라이언은 올해 44살이지만, 이미 30대에 컴캐스트의 진로를 바꾸는 중요한 합병을 잇따라 성공시켰다. 랄프는 차근차근 회사 규모를 키워나갔지만, 브라이언은 아버지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시켜나갔다. 브라이언은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왜 캐이블 컴퍼니에 머물러 있어야하나. 우리는 새로운 황금시대를 살고 있다. TV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 브라이언은 1997년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10억달러 투자를 이끌어 냈고, 그 자금으로 프로 농구팀과 프로 하키팀을 인수하고 스포츠 전문 채널도 출범시켰다. 1998년에는 디즈니에서 12년간 일했던 방송전문가 스티븐 버크를 영입, 본격적으로 방송진출을 꾀했다. 브라이언은 미디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M&A를 계속해 나갔다. ◇끝없는 전쟁의 시작 미국의 미디어 산업은 영화, TV, 게임, 뉴스, 인터넷, 신문잡지 등 엔터테인먼트와 매스미디어의 거의 전 영역이 `수직계열화` 바람에 휩싸여 있다. 6개의 거대한 `미디어 패밀리`가 미국, 실질적으로는 전세계 미디어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첫번째가 `비아콤-CBS-MTV` 그룹이다. 얼마전 슈퍼볼 대회에서 가수 자넷 잭슨의 가슴 노출 사건으로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이 그룹이다. 당시 슈퍼볼 중계는 CBS가 맡았고, 하프타임 쇼는 MTV가 제작했다. 두번째가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폭스TV-디렉TV-뉴욕포스트` 군단이다. 미국, 영국, 호주의 언론계를 지배하는 머독은 영화 007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언론황제는 영국과 중국 간에 전쟁을 유도, 자신이 소유한 신문사에서 이를 특종보도토록 하는 엽기적인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세번째가 `GE-NBC-유니버셜비방디` 그룹이다. 세계 최대의 기업이라는 GE와 방송, 영화가 결합된 형태다. 네번째가 `타임-워너-CNN-AOL` 그룹이다. 이 그룹은 IT 버블기에 AOL을 간판으로 내세워 인터넷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MS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MS는 NBC와 손을 잡고 MSNBC를 만들어 이에 대항했다. 다섯번째가 `디즈니-ABC-ESPN` 진영이다. 공중파인 ABC와 스포츠 채널인 ESPN, 가족 채널인 디즈니가 결합된 가장 이상적인 `미디어 제후`다. 특히 디즈니가 보유한 엄청난 컨텐츠와 브랜드 이미지가 다른 그룹들을 압도하고 있다. 마지막이 컴캐스트다. 컴캐스트는 2001년 AT&T브로드밴드를 인수하면서 `미디어 전쟁`에 뛰어들었다. 당시 AT&T브로드밴드 인수전은 여섯 제후들이 맞붙어 총력전을 펼친 최초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브라이언이 이끄는 컴캐스트가 승리함으로써 미디어 전쟁의 판도가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컴캐스트는 AT&T브로드밴드를 인수하면서 디즈니와 같은 컨텐츠 중심의 미디어 그룹을 M&A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오늘 월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디즈니 M&A의 씨앗은 이미 그때 뿌려진 것이다. 월가는 컴캐스트가 디즈니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미디어 전쟁`이 끝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일단 컴캐스트가 디즈니 그룹을 접수하면 미디어 제국의 패권은 컴캐스트로 넘어오게 된다. 미국 최대의 케이블망과 컨텐츠 그룹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난공불락의 요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머독이 가만히 두고보지는 않을 것이다. 머독은 타임워너를 공략, 다시 한번 최고의 자리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 엄청난 현금 동원력을 가진 MS도 미디어 전쟁을 수수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와 인터넷의 결합, 방송의 위력을 잘 아는 MS는 GE-NBC와 모종의 음모를 꾸밀 개연성이 높다. 더구나 MS는 컴캐스트의 지분도 7%나 보유하고 있다. 거대 미디어 그룹의 등장은 반드시 반독점 문제를 야기시킨다. 제후국들이 지존의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일 때 진정한 적은 전장에 있지 않다. `반독점`의 칼을 쥐고 있는 워싱턴 정가와 연방통신위원회가 언제든지 배후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얽히고 설킨 미디어 대전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브라이언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정치인 M&A의 최종 상대는 연방정부, 감독기관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수합병은 시장 독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컴캐스트의 역사는 M&A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만큼, 워싱턴을 다루는 솜씨도 노련하다. 우선 브라이언 자신이 공화당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2000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공화당 전국대회는 컴캐스트의 본거지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다. 당시 브라이언은 이 대회를 주관한 전국위원회 공동 회장이었고, 전당대회가 열린 장소가 다름아닌 컴캐스트 소유의 스포츠 센터, `컴캐스트 센터`였다. 컴캐스트의 정치 헌금 규모도 2000년 들어 급증했다. 1990년까지 컴캐스트 명의의 정치자금 기부금은 8450달러에 불과했다. 그것이 2002년에는 59만9372달러로 늘어나고, 2003년에는 42만4159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돼 있다. 정계와 선이 닿아있는 인사들을 영입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컴캐스트 워싱턴 사무소는 1명이 상주하던 것이 2001년 AT&T브로드밴드 인수를 계기로 핵심 인력만 6명으로 늘어났다. 컴캐스트의 부사장인 데이비드 코헨은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사회적 책임이 커졌고, 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 워싱턴에서 할 일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에 컴캐스트에 합류한 빅토리아 클라크는 지난해 6월까지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언론담당 보좌관이었다. 그녀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행정부에서 일했고, 존 맥케인 상원의원을 보좌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라크 전쟁 당시 언론인들을 군부대와 동행시키는 `Embeded Reporter Program`을 기안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컴캐스트가 공화당 인맥만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 코헨 부사장은 1990년대 필라델피아시가 적자로 허덕일 때 당시 시장이었던 에드워드 렌델을 도와 시 재정을 강화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렌델 시장은 현재 펜실베니아 주지사로 있으며 2000년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컴캐스트에 입사한 케리 노트는 MS에서 5년간 반독점 소송을 진행한 백전 노장이다. 그는 텍사스 상원의원인 딕 어메이 공화당 상원의원을 14년간 보좌한 워싱턴의 마당발이다. 지난해 6월 합류한 멜리사 맥스필드는 민주당의 지도자인 톰 대슐 상원의원의 보좌관이었고, 제시카 왈레스는 하원 에너지상업위원회의 케이블, 방송 담당 자문관이었다. 제시카가 컴캐스트에 입사했을 때 하원 에너지상업위원회 WJ 빌리 의장은 컴캐스트가 소유한 뉴스 채널에 출연, "우리는 그녀를 잃었지만 컴캐스트는 엄청난 인재를 얻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컴캐스트는 워싱턴에서 매년 봄 열리는 `벚꽃 축제`의 최대 후원사이기도 하다. 컴캐스트는 이 축제를 이용, 자사 직원을 대거 워싱턴으로 보내 250여명 의회 의원들을 일일이 방문, 회사의 투자 내역을 설명하는 이른바 `로비 데이 행사`를 갖는다. 그렇다면 야심과 돈, 로비 능력을 겸비한 브라이언은 `미디어 대전`을 과연 어떻게 치뤄냈을까. 전쟁의 판도를 바꾼 2001년 AT&T브로드밴드 인수의 막전막후는 `The Lord of the Media②`에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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