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여론조사와 JD파워

  • 등록 2007-08-21 오후 6:30:00

    수정 2007-08-21 오후 6:21:32

[이데일리 안승찬기자] 1년2개월간의 경선레이스 끝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밀렸던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죠. 경선 과정에서 두 후보는 여론조사 방식을 두고 '선호도'로 해야한다, '지지도'로 해야한다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는데요, 막상 여론조사가 승부를 결정지은 것을 보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증권부 안승찬기자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JD파워'를 떠올립니다. 
 
얼마전 미국의 자동차품질조사업체인 JD파워는 올해 자동차내구품질조사(VDS, Vehicle Dependability Study)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에서 구매 후 3년이 지난 차를 대상으로 한 내구품질조사인데요, 미국 소비자들에게 차를 선택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죠.
 

 특히 3년이 지난 '중고차'에 대한 품질조사여서, JD파워의 내구품질조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경우 중고차가격이 올라갑니다. 또 신차의 판매가격 상승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차는 이번 조사에서 기대 이하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지난해에서 비해서는 두계단 올라선 21위를 기록했지만, 전체 평균에도 못미치는 중하위권입니다.

사실 이번 조사에 대해서는 현대차나 시장에서나 모두 기대감이 컸던 게 사실입니다.  JD파워가 조사하는 신차품질조사(IQS)에서 현대차는 지난 2004년부터 갑자기 7위로 급부상했고, 지난해에서는 3위까지 올랐기 때문입니다.

조사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게 만드는 JD파워. 하지만 일각에서 'JD파워의 조사를 과연 신뢰할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일단 JD파워의 조사방법은 이렇습니다. 품질조사를 위해 매년 차량 구매자의 명단을 확보해 '무작위'로 10만~20만명에게 설문지를 발송합니다. 그 속에는 현금 1달러와 반송봉투도 함께 들어있죠.

무작위인 데다 표본수도 적지않은 규모라는 점은 일단 합격 수준이지만, 문제는 1달러, 우리 돈으로 1000원도 되지 않은 돈과 함께 들어있는 설문 조사의 '분량'에 있습니다. 8페이지에 달하는 설문조사는 빽빽한 객관식과 주관식 질문들도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JD파워의 설문지를 보고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처음 설문지를 봤을 때 솔직히 누가 이런 설문에 제대로 응할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일반적인 소비자라면 단돈 1달러의 수고료를 받고 작성하기에는 너무 귀찮고 긴 설문입니다."

따라서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런 가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단돈 1달러지만 왠지 공짜로 받은 것 같은 부채의식이 싫어서 대충이라도 써서 보낸다.' 또 이런 가정도 가능하겠죠. '특별히 대답하지 않은 문항에 대해서도 굳이 꼼꼼하게 다 답한 성실한 소비자의 경우 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만약 첫번째 가정에 해당하는 응답자가 많다고 한다면 JD파워의 설문 조사는 객관적인 품질조사라기 보다는 오히려 대중적인 브랜드에 후한 점수를 주는 단순 '인기투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성있는 차 보다는 무난한 차가 보다 후한 점수를 받는 경향이 강하게 되겠죠.

또 설문조사의 질문에도 과연 객관적인 품질을 조사기에 적합한지 의문이 가는 문항도 있더군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사용방법이 이해하기 쉬운가', '스위치의 위치가 조작하기 쉬운 곳에 있나', '실내 조명이 매력적인가', '연비가 적당한가' 등등.

사실 이런 질문들은 평가자 개인의 취향과 소득수준, 연령대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JD파워의 조사결과를 객관적인 품질 조사라기 보다는 개인의 주관적인 평가를 반영하는 대략적인 '감성품질' 조사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두번째 가정의 응답자들이 많은 경우죠. 이들은 차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꼼꼼하게 불만사항들을 적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비자의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인 BMW 미니, 시보레 콜벳 등의 경우 소비자들은 오히려 꼼꼼하게 불만사항을 적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응답자가 많을 수록 역설적으로 그 브랜드의 내구품질조사 결과는 낮아지게 되는 거죠. 실제로 올해 조사에서 BMW 미니와 포르쉐 등은 (아이러니하게도?) 각각 27위, 28위를 기록하며 현대차보다 내구품질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하나 더.  JD파워의 '1달러' 설문비용은 매년 수백만달러에 달합니다. 보낸 사람도 수십만명인 데다 발송과 반송비용까지 감안하면 그 정도 비용은 들어가는 거죠. 이를 어디서 다 충당하냐구요? 물론 JD파워의 조사결과를 광고에 이용하는 자동차 메이커로부터 받습니다.

보통 수백곳 이상인 미국 딜러에게 제공되는 JD파워의 트로피는 개당 50달러 수준이고, 광고에 JD파워 수상결과를 인용할 경우에도 건당 2만5000달러에서 많게는 50만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결국 JD파워의 조사비용은 수상한 자동차 메이커가 대부분 지불하는 셈이죠.

한 자동차 전문가는 이렇게 주장하더군요. "JD파워가 품질 평가의 신은 아니다. 이 역시 마케팅의 도구일 뿐이다"라고 말이죠. '현대차의 내구품질 결과가 더 좋았어야 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조사도 일정부분 '의도'와 '속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드리고 싶은 거죠.

한나라당 경선으로 돌아가봅시다. 만약 이번 경선에서 절충안(실제 경선 설문조사는 '지지도'와 '선호도'를 조합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뽑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로 했다) 대신 박 전 대표측이 요구했던 '지지도'로 조사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역사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혹시 결론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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