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노무현정부 `작통권` 협상은 닮은꼴

노태우 `민족자존`-노무현 `자주국방` 일치
신데탕트·미소 군축시대-미국 전세계 군사전략 재배치
내쉬의 `게임균형이론`으로 상호이익 `설명 가능`

  • 등록 2006-08-11 오후 4:17:04

    수정 2006-08-11 오후 4:29:55

[이데일리 문주용 선임기자]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놓고 군통수권자인 노무현대통령를 정점으로 한 참여정부와 군원로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며 신행정수도이전 논란이후 다시 국민투표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협상은 10여년전 이뤄진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 협상과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여기서 많은 교훈도 얻을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한미동맹 약화`로 단정할수가 없다는 점이다.

◇노태우는 `민족자존`…노무현 `자주국방`

참여정부의 노무현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내세우며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하고 있다. 자주국방은 주권국가의 핵심이며, 자존심이라는 논리다.

10여년전에도 거의 똑같은 논리로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 협상이 시작됐다. 기본개념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등 3김과 노태우가 붙은 지난 87년 대선때 벌써 `주권적 자주`라는 개념에서 작전통제권 환수가 거론됐다. 특히 대선에서 승리한 노태우 대통령은 6공화국 출범직후 `민족자존`이라는 국정목표를 내세웠다. 또 한미간 3가지 현안으로 ▲용산 미국기지의 서울외곽 이전 문제 ▲군사정전위 유엔군측 수석대표의 한국군 장성 교체 문제 ▲평시 작전통제권의 조기 환수 문제등을 추진하게 된다. 

참여정부에서 평택기지 이전과 전시 작전통제권을 연계한 상황, `민족자존` 개념에 대칭한 `자주국방` 개념이 강조되고있는 점이 흡사하다.

◇필요는 외부에서 더 강했다..신데탕트·군축 시대 개막

원한다고 바로 협상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이보다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한미간 새로운 군사전략을 요구하고 있었다. 

미국과 당시 소련은 지난 86년 중거리 핵전력 감축을 논의하기 시작, 87년 폐기협정 합의, 89년12월 몰타 미소 정상회담을 갖고 "더이상 적이 아니며 양국 대립관계가 더 이상 국제정치의 긴장요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을 논의하는 한편, 한미간 군사비용 분담 갈등도 시작했다. 북한의 대남위협이 존재했지만, 탈냉전 국제정세는 주한미군의 감축을 요구했고, 막대한 재정적자로 고전하던 미국은 방위비 분담을 강력히 요구했다.

솔로몬 동아태 차관보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기화로 런·워너 수정안, 90년 미 국방부의 3단계 철수안이 마련된다. 우리가 주한미군 감축과 함께 방위비 분담요구를 받으면서 반대급부로 요구한 것이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다. 

참여정부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도 유사한 외부환경을 갖고 있다. 유일 초강대국이면서, 막대한 방위비 부담을 느끼고 있는 미국이 주한미군을 포함해 해외 주둔전략의 재배치에 나선 것이다.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용산에서 평택으로 미군기지를 옮기며, 전략적 유연성을 관철하려는 미국에 대해 우리나라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요구하게 된다. 방위비 부담을 전제로 평시 작전통수권 환수를 추진했던 노태우 대통령때와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

◇88 서울올림픽 성공개최…2002 한일 월드컵 성공 

당시 또다른 배경은 우리나라 국력의 신장이다. 6공화국은 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하면서 국제적 위상을 높였고 91년 소련과 국교를 정상화, 북방정책이 결실을 맺었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목소리가 고조되기도 했다. 위상에 걸맞는 한미동맹의 평등화를 요구한 것. 

이 점도 현재 상황과 흡사하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통해 다시한번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IMF 위기를 극복하면서 IT기술 주도국으로서의 경제적 위상을 갖추게 됐다. 민주정부가 잇따라 출범하고, 자주파 성격이 강한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한번 한미동맹의 평등화를 요구하는 것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노태우때도 작통권 환수 `빨리빨리`…미국은 지연작전 

노태우 대통령 시절 협상이 본격화됐지만 미국은 `지연작전`을 구사했고, 당시 국방당국은 가급적 빨리 평시 작전통제권을 확보하려 했다. 이점도 지금과 유사하다.

당시 미국은 한반도내 영향력을 최대한 지속하는 범위내에서 작전통제권을 재조정한다는 방침아래, 전시·평시 작전통제권의 일부만 이양하고, 환수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지연작전`을 폈다. 

반면 한국은 전시, 평시 작전통제권의 조기 환수를 원했지만, 방위비 부담은 최소화하려 애를 썼다. 

처음에 주한미군사령부는 처음에는 평시 작전통제권을 96년에, 전시 작전통제권을 2000년이후 이양할 것을 제의했다. 이에 우리 국방부는 평시 작전통제권은 93년, 전시 작전통제권은 95년이후 환수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밀고당기는 협상끝에, 94년중으로 평시 작전통제권을 이양한다고 합의했다. 이과정에서 라스카시 한미연합사령관은 연합사령부의 위상약화를 이유로 반대하기도 했다. 평시작전권은 끝내 94년12월1일 0시에 이양됐다.

그렇지만 미국은 작전통제권 환수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억지로 환수하려 한 측면보다는 당시 미국의 군사력 재편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일방적 동맹에서, 협력적 동맹으로 변화하며 더욱 강화될 수 있었다.  

◇전시 작통권 환수, 한미동맹 흔들까 

노태우 대통령시절 시작해서 김영삼 대통령시절 마무리된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가, 양국간 힘의 격차가 분명했던 상황에서 협상을 통해 성사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또 한미동맹이 손상되지 않았던 이유는 또 뭘까. 

이는 `죄수의 딜레마` 이론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두 나라가 자기 이익만 취할 경우 동맹이 깨지는 것은 물론 미국은 한반도내 영향력을 잃고, 한국은 대북 전쟁억지력을 잃는다. 때문에 양측이 자기 이익이 아닌 상대방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 전략을 파악한 후 협력적 전략을 택했던 것. 

특히 미국은 조기이양에 합의하는 대신 평시에 전쟁억제 및 유사시 전쟁준비를 위해 필요한 기능과 권한의 위임을 요구하는 `균형제안전략`을 제안했고 한국은 이를 수용했다. 이처럼 힘의 우위가 분명한 상황, 즉 비대칭 협상에서도 양측이 균형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노벨 경제학자 존 내쉬의 `게임균형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한지윤 씨가 쓴 석사학위 논문 `한미 군사동맹의 평시작전통제권 이양 협상에 관한 연구:비대칭 협상에서 상호이익의 균형 추구`를 참조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하면 우리 국방력만으로는 안보를 지킬 수 없을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지만, 이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인식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전시 작전통제권을 이양하는 조건으로, 얻고자 하는 이익도 분명하다는 점에서 군 원로들의 우려는 협상에 대한 이해 부족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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