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거투르드 스타인(Gertrude Stein)은 임종을 맞은 자리에서 오랜 친구 앨리스 토클라스(Alice B. Toklas)에게 "정답이 뭔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토클라스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아무 대답도 못하자 다시 거투르드 스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그렇다면 질문은 뭔가?"
선문답 같은 이 대화 속에 짧은 진실이 있습니다. 답은 질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저출산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19조3000억원은 엉뚱한 대답에 쓰여질 수도 있습니다.
저출산 문제의 핵심은 `육아에 돈이 많이 든다`가 아니라 `여성도 일하고 싶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현실을 들여다 볼까요?
자 그럼 이제 여성의 직장생존기를 한번 가상체험 해봅시다. 우선 입사시험부터가 관건입니다. 뛰어난 성적과 원만한 성격으로 사회생활에 적합한 여성 ○○○씨는 모든 관문을 다 거치고, 면접장의 마지막 질문에서 그만 미끄러지기 십상입니다.
"○○○씨, 남자친구 있어요?" 단순하게 생각하고 "네, 있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하면 떨어지기 쉽습니다.
있든 없든 앞으로 결혼을 해도 직장생활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해야 합격입니다. 면접에서부터 임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결혼은 여성에게 미묘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무사히 그 과정을 통과해 직장인이 된 ○○○씨, 자신도 어엿한 사회인이 돼서 돈을 번다는 기쁨도 잠시 결혼과 함께 찾아온 임신이 갑자기 직장생활의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칼퇴근하기도 눈치보이는 직장에서 임신은 칼퇴근과는 또 다른 중압감으로 작용합니다.
임신사실을 밝힌 여성은 운이 좋다면 빠듯한 출산휴가를 써서 몸조리 겨우하고 다시 직장에 나올 수 있습니다. 갓난 아이를 부모님에게 맡기거나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그 집 문제죠. 그러나 불운한 경우(이런 경우 운에 따라야 합니다. 법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여성들은 아주 잘 압니다.)
직장상사는 그녀에게 완곡하지만 직접적으로 퇴직을 종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여성이 직장을 포기합니다. 소수의 `독한` 여성만이 직장에서 살아남습니다.
엄마와의 분리불안을 견디지 못해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 가사와 육아에 불만을 토로하는 남편을 뒤로 한채 ○○○씨는 운이 좋게도 직장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직장생활도 연차가 쌓여서 제법 유능하다는 외부평가도 듣습니다. 하지만 승진은 어렵습니다.
이것은 그나마 오랜 기간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씨의 경우입니다. 면접에서 실패한 여성, 중간에 임신해서 포기하거나 퇴직을 종용당한 여성들이 대다수입니다.
이런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일자리입니다. 독신을 고집하거나 임신을 회피하는 여성들 대부분이 그 이유를 직장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교사나 공무원 처럼 법이 현실에서도 적용되는 천혜의 환경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여성들은 아이 갖기를 주저하거나 포기합니다. 육아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도 문제지만 누가 자기 자식 키우는데 돈든다고 포기하겠습니까? 단지 지금까지 공부하고 노력해서 겨우 얻은 직장생활을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이 임신을 두렵게 만듭니다.
어쩌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돈이 한푼도 안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모릅니다. 바로 직장에서 여성이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새로운 직장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제재도 함께 따라야 실현되겠죠. 기업이 쉽게 여성을 해고하지 못하도록 세금과 법으로 규제한다면 임신을 이유로 퇴직을 종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대학의 취업정보센터처럼 여성들에게 취업정보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주선하는 공공기관을 만든다면 더 효율적일 것입니다.
얼마전 제 친구가 임신을 했습니다. 일 때문에 결혼 안하겠다던 친구가 결혼도 하고 임신도 해서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니 참 대견했습니다. 그 친구도 직장 때문에 처음에는 임신한 사실이 달갑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집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부족하지만 만족해했습니다. 이런 친구에게 돈을 지원하는 것과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서로 어떤 비중으로 다가올지는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런 현실에 맞게 19조원을 써야할 것입니다. 국민의 세금은 소중한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