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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점은 성북구 와룡공원으로 삼는 게 좋다. 이 코스가 훨씬 쉽다. 창의문에서 오르는 길은 성곽길 꼭대기까지 가파른 계단길이어서 버겁고 힘들다. 운동 삼아 오르려면 굳이 성곽길 외에 다른 코스도 많다.
입구부터 경관이 좋았다. 성 밖 잘생긴 산자락 아래엔 성북동의 고급주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대로 성곽 안쪽은 서민주택이 많다. 예전엔 성안 사람을 ‘성안 분’, 성밖 사람을 ‘성밖 놈’으로 나눠 불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4대문 안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였다. 세상은 변했다.
말바위 쉼터에서 성곽 안으로 놓인 나무육교를 넘어서 올라가면 안내소가 나온다. 안내소에서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출입증을 준다. 원래 여기부터 숙정문을 지나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2007년 봄 개방됐다. 1968년 김신조가 특수부대원 30명과 함께 침투했다. 자하문에서 경찰의 검문에 들켰고, 수류탄을 터뜨리고 총격전도 벌였다. 성곽길엔 1·21 소나무가 있다. 총탄자국을 톱밥으로 때워놓았다. 어쨌든 이후 39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됐다. 성곽길엔 군인으로 보이는 경비원이 배치돼 군사시설에 대해선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한다. 숙정문은 1·21 소나무 못미처 있다. 숙정문은 쉽게 말하면 북대문이다. 조선시대엔 이 문을 항시 막아놨다고 한다. 출입을 못하게 관원들이 지켰다. 남대문을 막고 숙정문을 열었을 때는 가뭄이 심할 때뿐이었다. 대체 가뭄과 북대문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남쪽은 양기, 북쪽은 음기가 많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뭄이 심하면 음기를 통하게 해 비가 오기를 바랐다. 이게 바로 풍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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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도 풍수지리설에 따라 만들었다. 소나무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북악마루 조금 못미처 탁트인 공터가 나오는데 바로 여기서 ‘풍수설이란 이런 거구나’를 느낄 수 있다. 서울이 어떤 자리에 세워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포인트다. 광장공사를 하고 있는 세종로와 경복궁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도심을 둘러싼 주변의 산들도 잘 보인다. 풍수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무지렁이라도 “거 참, 서울 포근하고 아늑하게 보인다”고 할 만하다. 그럼 동서남북을 보자. 왼쪽 좌청룡은 대학로 뒷산격인 낙산이다. 우백호는 인왕산이다. 남주작은 남산이 되겠다. 경복궁에서 보자면 북현무는 ‘내가’ 밟고 서있는 백악산이다. 서울을 둘러싼 산은 한꺼풀이 아니다. 홑꽃이 아닌 겹꽃처럼 이중으로 수도를 싸고 있다. 인왕산, 남산, 북악산, 낙산 너머에 북한산, 덕양산, 관악산, 용마산이 겹겹이 서있다. 최준식 교수는 <서울 문화순례>란 책에서 “중국은 수도에 정궁을 지을 때 북경에 있는 자금성의 경우처럼 수도 한가운데 궁궐을 짓는다. 그런데 조선은 그 예를 따르지 않고 풍수설에 입각해서 서북쪽으로 치우쳐서 경복궁을 지었다”고 썼다. 황제는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기 때문에 궁궐을 한가운데 배치했고, 조선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게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이 서로 다르다.
성곽길은 조선을 아는 첫걸음이다. 1년 동안 서울 성곽길을 답사한 녹색연합의 노상은씨는 “성곽길이 서울의 생태축”이라며 “경주하듯 걷는 길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생태, 경관 같은 자원을 만나는 길”이라고 했다.성곽에선 서울이 제대로 보인다.
-길잡이-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출구에서 하차한다. 마을버스를 타고 성북초등학교 앞에서 내린다.
걸어서 15분, 마을버스로는 5분 정도 걸린다. 길건너 왼쪽으로 가면 성곽길 입구다. 창의문 쪽으로 가려면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자하문 고개에서 내리면 된다. 말바위 안내소(02)765-0297, 창의문안내소(02)730-9924~5
*녹색연합(www.greenkorea.org)은 지난 1년 동안 성곽길을 답사한 뒤 4개 코스로 나눴다. 서울시내 주요관광안내소에서 배포한다. 안내처는 홈페이지에 나와있다. 자료실에서 pdf파일로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다.
*등산로에 매점은 없다. 물과 간단한 도시락을 가져가는 게 좋다. 군사시설물에 대한 촬영은 금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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