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두 아들(박서원 오리콤 부사장·박재원 두산중공업 상무)과 함께 두산그룹을 떠난 박용만 전 회장이 오랜만에 SNS에서 벗어나 대중과 소통에 나섰다. 생애 첫 북토크 현장에서다. 그의 첫 책인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마음산책)를 펴낸 지 1년여만이다.
박 전 회장은 지난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서울 종로구 역사책방과 선릉역 인근 최인아책방에서 북토크를 열고 지난 35년여간 경영인으로서의 박용만과 ‘인간’ 박용만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막힘없이 술술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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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방역지침 탓에 이날 현장에 모인 50여명의 독자와 온라인 줌을 통한 질문만으로 약 2시간이 꼬박 채워졌다. 20~30대 독자들이 많았고, 40대, 50대도 종종 보였다. 젊은 층 독자가 많았던 만큼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과 노하우를 묻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박 전 회장은 대필작가가 기업인의 구술을 받아 가공하는 일반적 관행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집필했다. 편집자가 판형 등을 제외한 내용에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박 전 회장은 “생긴 대로 살자는 게 나의 정체성”이라며 “꾸미지 않겠다는 얘기다. 포장한다는 게 아니라, 꾸밀 필요 없이 살겠다. 욕망을 버리고 포기하면 쪼잔하게 살 수 있다. 그게 내 정체성이고 목표”라고 강조했다.
2030세대를 향해서는 “미안하다”고 운을 뗐다. 박 전 회장은 “20~30대들과 미래 얘기를 하면 좌절로 귀결될 때가 많아 안타깝다. 들여다보면 평범한 꿈인데 그걸 레일 위에 올려놓는 일조차 안된다”며 “하고 싶은 말은 어른들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끌어들이지 말라는 거다. 기득권을 놓지 못하는 우리 세대가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먼 미래보다 오늘 주어진 작은 숙제를 충실하게 하는데 우선순위를 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면서 “인생은 무엇을 이루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최근 컨설팅업체 벨스트리트파트너스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앞으로의 행보를 묻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는 “다른 분들이 제 나이에 그만두면 여행도 다니시라고 그렇게 얘기하던데, 왜 저한테는 하나같이 뭐 할 거냐고 물어보느냐”며 농을 던지면서도 “무슨 일을 한다고 정한 게 없다”고 짧게 답했다.
박 전 회장은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박용만의 아들로 살았다. 이제 내가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겠다. 아들이 자기 인생을 사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